<2>삼겹살양배추말이와 산채비빔밥, '이팝나무, 꽃 같은'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이팝꽃이 한창 보글보글 끓고 있지요? 조팝꽃은 벚꽃과 함께 어우러져 피지만, 이팝나무 꽃은 그보다 조금 늦은 보리가 팰 무렵에나 피어 하필 보릿고개의 허기를 부추기곤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이팝꽃은 뭔가 사회경제적, 또는 역사적 함의를 지닌 식생으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전라도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학생운동권 출신도 아니지만, '광주'
는 이십 대 이후 제 정치 의식과 삶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며 작용해온, 이를테면 정치적 원죄의식 같은 것이었지요. 그래서 '광주'는 소위 486으로 대변되는 반독재민주화세대의 의식 코드였던 셈인데요.
이맘때쯤, 할 수만 있다면 수천, 수백 그릇의 하얀 고봉밥을 지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에게 지어 올리고 싶지만, 시인에겐 시가 곧 밥이니 시로 밥을 짓든지, 밥으로 시를 짓든지 오직 극진할 따름입니다. 흠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