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맑은닭국과 '대줏밥을 추억함'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단 한 번도 이 형한테 대들거나 역정을 내지 않았던 제 아우가 한 날 전화를 했더랬지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는데 대뜸 "아버지 오래 못 사실 것 같으니 형이 모시고 가라"는 겁니다. "결혼한 형이 아버지를 모셔야지 내가 왜 아버지를 모셔야하느냐"는 항변이었던 거지요. 그때 나는 해직된 상태에서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하고 있었고, 결혼 안 한 아우가 김해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거든요.
어디 가까운 데 방 하나 더 얻어 아버지를 모시면 안 되겠냐고 아내를 설득했지만 여의치 못했고······. 결국 내가 김해로 내려가서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던 건데요. 그래서 사무장을 더 이상 맡기 어렵겠다고 지회에 알리고······. 그날 해직 동료들 하고 밤늦게까지 통음을 하며 설움에 복받쳐 얼마나 울었던지요.
그렇게 내려가서 보름 정도 아버지를 모시다가 '사적인 일'에 마냥 매달려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지회로 복귀했던 건데 말입니다. 얼마 못 가 아우의 싸늘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부음을 듣게 된 거였지요.
생전에 앙숙이었던 관계로 하관할 때 흙 한 줌 던지는 일도 허락받지 못한 나를 이룬 팔 할은 사실 바람이 아니라 아버지였으니……, 짐짓 핑계 삼아 맑은 닭국 한 그릇 올리는 저녁, 어디서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한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