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생일상과 '아버지의 집'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도 한참동안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더랬지요. 특히 아버지한테 말입니다. 생전에 든든하게 뒤를 봐주시기를 했나. 그렇다고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물러주시길 했나. 자갈논 몇 마지기라도 물려주시길 했나. 많지는 않았지만, 얼마간의 빚까지 물려주고 떠나신, 그래서 내 젊은 날은 아버지에 대한 여전한 반발과 오기의 세월이기도 했던 거지요. 그런데 내 애들이 크고, 아버지가 나를 낳은 마흔 나이를 넘기고서야 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아버지, 아니 우리 부모님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것이었지요. 무엇보다 내게 어디에서도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기 펴고 살 수 있는 독립심과 당당함을 남겨주셨지요, 나쁘지 않은 머리를 주셨지요, 멀쩡한 사지를 주셨지요, 잘 생기지는 못해도 남한테 불쾌감을 주는 정도는 아닌 이 얼굴을 주셨지요. 그리고 단 한 번도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남을 이겨야한다’고 윽박지르시지 않으셨던 겁니다. 전교조 포기각서를 쓰지 않고 끝까지 버틸 때도 단 한마디도 만류하거나 나무라지 않으셨고요.
무엇보다 제 어머니는 생명에 대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무욕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늘 ‘남한테 못할 짓 하지 마라’ ‘잘했다. 그 정도면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된 거지요. 아니 과분한 거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