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시 쓰기 참 잘했다

[오인태의 詩가 있는 밥상]시 쓰기 참 잘했다

오인태 시인
2013.06.17 08:00

<13>갑오징어파말이와 '시를 쓴다는 것'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글쎄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학생 때까지 장래희망을 법관이나 정치가로 적었던 걸 보면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됐을 수도 있겠다싶군요. 그러나 지금의 법관이나 정치인들에 내 모습을 투영해보면 그러지 않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고등학교를 문예특기생으로 입학해서 3년을 장학생으로 버티며 자연스레 시인을 꿈꾸게 됐던 건데 말입니다.

살아오면서 몇 번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선택의 기준은 한결같이 '이 길을 선택하면 시를 계속 쓸 수 있을까'였습니다. 해직을 선택할 때도 그랬고, 복직을 선택할 때도 그랬지요. 해직과 복직을 선택했다고 하니 좀 이상한가요? 맞습니다. 그땐 해직이나 복직이나 선택사항에 해당했었지요. 어쨌든 지금도 세상과 사람에 절망할 때면 혼자만의 기도로 간구하는데요,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고 말이지요. 그래야 시를 쓸 수 있으니까요.

바라건대, 무엇이 되고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는 날까지 시를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오늘은 시인을 위하여 붉은 소주 한 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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