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 시인의 詩가 있는 밥상]너무 달거나, 너무 쓰거나

[오인태 시인의 詩가 있는 밥상]너무 달거나, 너무 쓰거나

오인태 시인
2013.10.25 07:51

<68>고들빼기김치 그리고 '고들빼기김치, 같은 시'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여러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허용’과 ‘인정’이 많아지는 것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젊었을 때는 도저히 용납하거나 인정할 수 없었던 일이 이제 그러려니, 또는 그럴 수 있겠거니, 하는 때가 있거든요.

물론 인정의 대상은 사람보다도 주로 사람의 일에 해당하는 것일 텐데요. 이렇게 어떤 사안이든 두루 용인하게 되는 것은 그 일 자체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거나 기준이 느슨해졌다기보다 자기와 다른 기준도 허용하고 인정하는 데서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자기 나름의 원칙이나 기준을 아예 포기하는 건 아니겠고요. 자신의 정체성에 관련된 소신과 원칙, 곧 살아오면서 일관해온 삶의 철칙은 쉽사리 포기되는 게 아니거든요. 다만 나와 ‘같음’만 받아들이다가 나와 ‘다름’도 허용하는 차원일 텐데요.

이렇게 타자의 기준이나 입장도 인정하고 자아의 원칙도 지켜야 마땅한데, 그게 어디 나이만 먹는다고 쉽게 되던가요. 나이에 걸맞게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야지요.

이즈음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고들빼기 뿌리가 제법 토실하니 살이 쪘을 텐데요. 마른 풀잎을 헤치고 뿌리째 캔 고들빼기의 쓴 물을 우려내서 김치를 담그면, 쓴듯하면서도 다디단, 단듯하면서도 쓰디쓴……, 삶도 시도 얼마나 더 살고 써야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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