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해물칼국수 그리고 '고래구멍'
[편집자주] "그래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말게 해 달라(오인태 시인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 재인용)'. 얼굴 모르는 친구들에게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있다. 그는 교사이고 아동문학가이고 시인이다. 그는 본인이 먹는 밥상의 사진과 시,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하고 있다. 시와 밥상. 얼핏 보면 이들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오인태 시인에겐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삶을 산다는 것. 시 역시 때론 각박하고 따뜻한 우리 삶 우리 이야기다. 시와 함께 하는 '밥상 인문학'이 가능한 이유다. 머니투데이 독자들께도 주 3회 오인태 시인이 차린 밥상을 드린다. 밥상을 마주하고 시를 읽으면서 정치와 경제를 들여다보자.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니 어려울 게 없다.

예전에 소설 쓰는 사람을 소설가, 희곡 쓰는 사람을 극작가라고 하는데 왜 유독 시 쓰는 사람만 시인이라고 하는지 그 까닭이 작품 속 인물과 작품을 쓴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사실은 산문과 시의 장르적 특질은 작중인물과 작가, 시의화자와 시인의 관계보다도 작가와 시인의 세계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이든 시든 글을 쓰는 자아가 있고 세계(대상)가 있기 마련인데, 산문의 자아는 세계를 곧잘 대상화해서 보는 반면, 시의 자아는 본능적으로 세계를 자아와 동일화해서 본다는 것이죠.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적세계관인데요. 실제로 시인은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껴안아 더불어 희로애락하고, 또 그러기를 기꺼이 자처하는 존재들이지요.
유마경에서 그랬던가요?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고, 그것처럼 세계가 아프면 시인이 아픈 건 당연한 거고요.
‘칼 들고 나라 지킨다’고 칼국수, 맞나요? 칼을 들든 뭐를 들든 나라는 지켜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