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마쓰시타회장, 그에겐 운(運)보다 명(命)이었다

[따끈따끈 새책]마쓰시타회장, 그에겐 운(運)보다 명(命)이었다

김고금평 기자
2015.03.07 05:38

[BOOK] '운명'…존 코터 하버드 교수가 조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성장+겸손의 미학

마쓰시타 고노스케. 살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일 수도 있는 이 기업인은 마쓰시타전기를 세운 창업주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나쇼날이나 파나소닉은 우리 일상을 지배할 정도로 익히 알려진 제조명이다. 마쓰시타전기는 두 브랜드 아래 수백만 대의 VCR, 라디오, 면도기, 텔레비전 등을 수십개 국에 판매하며 일본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마쓰시타가 누구인지는 몇 개의 증언에 의해 윤곽이 잡힌다. 마쓰시타전기의 오가와 모리마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창업주와 설레는 만찬 자리에 초대돼 함께 식사를 했다. 창업주가 스테이크를 반쯤 먹고 남긴 뒤 주방장을 불러달라고 했다. “요리하느라 고생 많았는데, 제가 절반 밖에 먹질 못했어요. 요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80세나 된 노인이라 식욕이 예전 같지 않네요. 혹시 주방에서 기분이 상할까 걱정돼서요.”

다른 일화는 이렇다. 오가와가 이끄는 전기사업부가 90억엔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마쓰시타 회장이 그를 찾아왔다. “1000억엔의 매출을 내고도 적자라니. 이토록 한심한 지경을 만든 책임은 자네와 부하 직원들에게 있네. 또 최근 자네 사업부에 200억엔이란 큰돈을 빌려준 본사에도 책임이 있지. 내일 그 돈을 회수할 생각이네.” 오가와는 회장의 호통에도 “돈을 회수하면 우리는 끝장”이라며 맞섰다. 회장은 경영정상화 계획을 수립하면 은행에 추천서 정도는 써주겠다며 회수 결정을 끝내 번복하지 않았다.

‘공적’인 마쓰시타는 위대한 사업가로 성인군자 같은 면모를 발휘했다. ‘사적’인 마쓰시타에겐 측근들에게 고함을 치고 밤마다 수면제를 복용하고, 본처외에 정부를 둔 사내의 이야기가 있다. 이 양 극단의 모습에서도 대중이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건 보통 기업 경영자와는 다른, ‘무엇의 특별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존 코터 교수가 쓴 ‘운명’은 마쓰시타전기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의 인생 및 경영 철학을 자세하게 분석한 ‘리더십 수업’이다.

존 교수는 그의 삶을 ‘운명’이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허약한 몸과 가난으로 몇 번의 좌절을 경험했지만, 역경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은 운명외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친구와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쓰시타 회장은 성공할수록 되레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다짐하며 외쳤다고 한다. “제조회사의 사명은 가난을 극복하고,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회 전체를 구제하여 번영케하는 것입니다. 모든 제품을 수돗물처럼 싼 값에 풍족하게 공급하는 것, 이것이 기업가나 제조회사가 추구해야할 목표입니다. 이것이 실현될 때 가난은 비로소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그에게 고급차를 타거나 프랑스의 유명한 별장을 사는 사적 물욕의 목표가 아니었다. 언제나 공공의 목표가 앞섰고, 마지막 줄엔 ‘인간’이 있었다. 경영에선 모두가 일선에 뛰어들길 원했다. 마쓰시타전기의 사업부에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위임함으로써 몸집이 불어난 기업들이 흔히 겪는 문제를 피해 주체적으로 앞정서길 원했고, 집단이라는 보호막 뒤에 개인이 숨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직원들을 위해 1965년 일본 대기업 최초로 주 5일제 근무도 도입했다.

마쓰시타에 따르면 미래 성공의 최대의 적은 시장도 기술도 노동력도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진, 나아가 그들의 자세였다. 마쓰시타는 새로운 사상을 수용하고 융통성있게 행동하는 인력을 키우는 일을 중요한 과업으로 삼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사고입니다. 자기 지식만 믿고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타산지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누구이건 겸손한 태도로 경청하면 뜻밖에 지식을 얻게 됩니다.”

마쓰시타전기는 소니와 곧잘 비교된다. 두 회사 모두 리더의 열정과 꿈, 창의력이라는 가치가 투영됐다. 하지만 비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도쿄에 본사를 둔 소니는 교양있고 도회적이며 세련된 느낌이 풍기는 반면,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마쓰시타전기는 촌사람 느낌이 강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와 달리, 마쓰시타는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전거 상점에서 견습공으로 시작했다.

경영 방식도 달랐다. 소니는 첨단기술회사로서 새로운 기술을 입힌 제품을 선보이는데 주력했다. 마쓰시타전기는 기존 제품을 보다 개선된 형태로 만들어 대중이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마쓰시타의 원칙은 명료했다. 30% 질을 높이되, 30% 더 싸게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1894년 일본 와카야마 현에서 태어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운명’같은 일생을 보냈다. 4살 때 빈곤층으로 전락해 9세때부터 돈벌이를 시작했고, 30세 이전에 부모형제를 모두 잃었다. 아들도 먼저 떠나보내야했다. 하지만 그는 ‘운명’이 이끄는대로 살았다. 공식 은퇴 후 28년간은 저술가, 자선사업가, 교육자,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막대한 부의 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다른 기업가와는 근본이 달랐다.

존 코터 교수는 “고등교육도 받지 못했고 카리스마도 없고, 이렇다할 인맥도 찾기 어려운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성장’”이라며 “그는 한 인간으로서, 기업가로서, 리더로서 성장과 겸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이 곧 그의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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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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