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정동극장 신임이사장(한컴 회장) "김태희 주연 춘향전쯤 돼야…"

김상철 정동극장 신임이사장(한컴 회장) "김태희 주연 춘향전쯤 돼야…"

김고금평 기자
2016.01.06 03:10

[인터뷰]"중국산 부채라니, 전통문화 생각하면 피가 끓어…전통문화 접목, 정동극장 이미지 높일 것"

김상철 한글과컴퓨터 회장은 지난해 11월 정동극장 이사장에 임명된 후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통문화만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며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이목을 끄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김상철 한글과컴퓨터 회장은 지난해 11월 정동극장 이사장에 임명된 후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통문화만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며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이목을 끄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지난해 11월 17일 정동극장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된 김상철(63) 한글과컴퓨터(한컴) 그룹 회장을 만나러 12월 초 경기도 판교 사옥에 도착했을 때, 낯선 풍경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물 꼭대기 층에 수목원을 방불케 하는 ‘꽃과 나무 단지’가 덩그러니 수 놓였기 때문. 겨울 속의 봄꽃부터 관상목까지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싱그런 냄새를 풍기며 방문객들을 일일이 반기고 있었다. 김 회장을 만나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했다.

그를 만나려는 모든 이들에게 ‘문화적 감성’을 은근히 이입시키는 김 회장에게 “문화적”이라고 한마디 건넸더니, “아이코, 무슨 말씀을. 전혀 문화적인 인간이 아닙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일하다가 잠깐 나가서 빙 돌기도 하고, 새에게 모이도 주고…”라며 짤막하게 덧붙였다.

아무리 봐도 ‘문화적’일 수밖에 없는데, 김 회장이 한사코 ‘아니다’고 부인하니, ‘응답하라 1988’식으로 ‘음메에에~’란 추임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장 취임에 대한 배경과 소회를 물었다. 그는 “2014년부터 예술의전당 이사로 참여하고 훈민정음 국보 1호 운동에도 참여해서 이 자리를 맡긴 게 아닐까 싶다”면서 “이왕 맡았으니 좀 의욕적으로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 회장은 되도록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사장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전통문화의 진정한 세계화”라고 자연스레 답변했다. 그리고 이 답변은 꽤 길게 이어졌다.

“제가 아직 잘 모르고 이사회와 상의해 봐야겠지만, 정동극장 이미지를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요. 그 중심에는 물론 전통문화가 있죠. 전통문화를 어떻게 대중에게 친밀하게 접목하느냐, 또 현대적으로 해석하느냐에 중점을 둘 생각이에요. 일본의 전통 경극 ‘가부키’ 공연은 늘 만원이에요. 우리의 전통문화는 어떤가요?”

그는 가부키의 성공 공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스타마케팅이다. 전통의 재료와 현재의 인물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전통의 재발견은 요원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명한 배우들은 뮤지컬을 하지만, 고전극에 참여하지는 않잖아요. 전통문화를 위해 춘향전에서 김태희가 나오고, 고전예술 공연에서 조용필이 노래를 부르는 식의 파격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그런 인기몰이를 하지 않는다면 전통문화는 늘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다른 하나는 히스토리의 이입이다. 태국, 아르헨티나 등 주요 관광국의 전통문화 공연이 비교적 간단하게 구성돼 있는데도 여러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에 대한 건국 신화 등 역사적 스토리가 일관되게 전개됐기 때문.

“그에 비해 우리 콘텐츠는 많기는 한데, 상징적인 콘텐츠가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국민 정서를 껴안을 만한 또렷한 상품이 없죠. 일본 벚꽃 축제만 하더라도 벚꽃에 대한 상품만 2000가지가 넘어요. 우리는 무궁화에 대한 파생 상품은커녕, 축제 하나 있나요? 앞으로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문화 요소들을 콘텐츠로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인 셈이에요.”

전통문화에 대해 길고 오랫동안 얘기가 가능했던 건 그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김 회장은 4년 전 사단법인 ‘우리문화지킴이’(우문지)를 만들어 명예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했을까. 그는 “콘텐츠 때문에 열 받아서 한 일”이라고 했다.

“인사동에 가면 중국제 부채가 널렸어요. 우리 것을 남의 손에 빌어 판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대중이 쉽게 살 수 있도록 구미가 당기는 격 있는 제품을 알리고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셈이죠. 손님에게 줄 선물로 우리는 우산 아니면 타월 정도만 고려하지만, 자개 같은 소품을 선물로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전통문화에 대한 콘텐츠 개발과 홍보 등에 더 주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토종 비결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내놓으면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김 회장이 롤모델로 꼽는 콘텐츠는 장이머우(張藝謀) 영화감독이 연출한 오페라 ‘투란도트’다. 단순히 북이나 사물놀이 같은 전통요소로 승부하기엔 국가적 상징이 약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상철 한컴 회장은 자신의 일상에 문화적 재료들을 듬뿍 발라놓으며 살고 있었다. 꽃과 나무들이 가득한 한컴 사옥 꼭대기층에서 사진 촬영에 나선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새에게 모이도 주고, 한바퀴 빙 둘러본다"며 "그래도 난 '문화적 인간'은 아니다"고 겸손해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김상철 한컴 회장은 자신의 일상에 문화적 재료들을 듬뿍 발라놓으며 살고 있었다. 꽃과 나무들이 가득한 한컴 사옥 꼭대기층에서 사진 촬영에 나선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새에게 모이도 주고, 한바퀴 빙 둘러본다"며 "그래도 난 '문화적 인간'은 아니다"고 겸손해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재료들은 많이 갖고 있으니까요. 승무를 보여주더라도 조명이나 무대 장치를 멋있고 신비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죠. 우리의 문화는 대부분 실외 무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확장할 수단이 굉장히 많아요. 거기에 퓨전을 통한 발상 전환 콘텐츠가 덧붙여진다면 관객도 저절로 따라올 거라고 믿어요. 물에서 춤을 추는 투란도트의 무대처럼, 정장을 입고 하얀 고무신을 신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셈이에요.”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이미 4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문화 환수 운동, ‘우문지’ 대표 등 알게 모르게 문화에 발을 담그면서 이입된 의식은 자연스레 전통문화로 연결됐다. 그는 “역사를 알면 알수록, 전통문화 얘기가 나오면 나올수록 피가 끓는다”고 했다.

“이제 학교에서 이런 문화를 가르치나요? 아프리카가 내전을 벌이면서 종족이 없어졌고, 자신의 조상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살고 있어요. 이 역사를 알기 위해선 미국의 거대 기업을 찾아야 해요. 소니, 디즈니랜드, 구글이 모두 다른 역사의 흔적을 모조리 가져가고 있지 않나요? IT기업들이 다른 국가의 토속문화를 죄다 가져가 되판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진짜 춘향전의 노하우는 외국 기업이 갖고 있을지도 모르죠. 세계의 전반적인 흐름은 민족주의로 흐르고 자기 문화를 융성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류’가 진정한 민족의 혼으로 만들어진 상품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김 회장은 지난 2010년 주인이 8번이나 바뀐 위기의 한컴을 인수했다. 시장에선 회의적 시각이 많았으나, 그는 “한컴의 어제가 아닌 오늘을 보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렇게 키운 한컴은 2011년부터 4년간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문화 쪽에서도 기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모르죠.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한컴이 IT기업이니 문화 쪽에 도움 줄 일이 많을 테고, 우리 문화의 본질적 우수성을 고려하면 더 나아질 일이 많지 않겠어요?”

그의 답변은 다소 누그러진 겸손의 태도로 수위를 낮췄으나, 단단한 의욕의 그림자가 그의 방 한 켠을 가득 메운 공예품들 사이로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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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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