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쓰레기통 뒤지며 60년간 10만 고서 모은 이 사람

아파트 쓰레기통 뒤지며 60년간 10만 고서 모은 이 사람

박다해 기자
2016.02.22 03:20

[인터뷰]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책박물관 설립돼야"

고서 수집가인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는 "고서에는 우리의 정신과 역사, 문화가 다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김휘선 인턴기자
고서 수집가인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는 "고서에는 우리의 정신과 역사, 문화가 다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김휘선 인턴기자

"아쉽죠. 많이 아쉽죠. (지난 경매서 1억 3500만 원에 낙찰된) '진달래꽃'의 인기가 워낙 좋았나 봐요. 허허."

20일 서울 인사동 인사고전문화중심에서 열린 '제36회 화봉현장경매'가 끝나자 이날 경매를 주최한 여승구(80) 화봉문고 대표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날 출품작 가운데 서정주의 '화사집' 희귀본과 최남선의 '백팔번뇌'가 각각 3000만 원, 1000만 원에 낙찰됐으나 기대를 모았던 이인직의 '혈의 누' 등 일부 고가 출품작은 낙찰에 실패했기 때문.

그는 책의 가치가 미술품보다 낮게 취급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물론 일반 국민에게 미술품과 고서의 활용도가 같진 않겠죠. 미술품은 보면 예쁘지만 고서는 한자로도 돼 있고 활용도가 부족한 태생적인 한계는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과 역사, 문화가 다 책 안에 있는 것인데 얕볼 수는 없잖아요."

'고서수집광'인 여 대표가 고서와 함께 해온 세월이 올해로 61년째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사촌 형의 고서점에서 근무한 경험이 어느덧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60여 년 동안 그가 수집한 고서만 10만여 권이다.

그는 아파트단지 쓰레기통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다. 패지를 버리는 날이면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기웃거린다. 좋은 고서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인사동, 청계천, 황학동 뒷골목과 고서점은 물론이고 지방과 외국도 종종 다녔다.

"미쳐야 하는 일인데 가족들이 좋아할 리가 없죠. 수집을 깊고 넓게 하신 분들은 (다들) 굉장히 외로울 거예요."

그럼에도 그가 고서 수집을 계속 하는 것은 고서에 우리나라 문화의 뿌리가 담겨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가 가장 행운으로 생각하는 소장품 중 하나가 바로 '삼국유사'다.

"한국 고서의 최고봉은 삼국유사죠. 우리 민족의 뿌리가 단군인데 삼국유사 1권에 최초의 단군 이야기가 실려있어요. 2권에는 우리 문학의 봉우리라고 할 수 있는 향가가 실려있죠. 역사적으로 (한국이) 이러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가 있어요"

여 대표는 그러면서 또 다른 '한류'로 금속활자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출판인쇄문화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서양이 지배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발명이죠. 구텐베르크 발명 이후 일반 사람들도 책을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했잖아요."

'금속활자'를 한국의 브랜드로 키우면서 문화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국립책박물관' 설립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그는 사재를 털어 직접 박물관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적자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운영 2년여 만에 얻은 입장료 수입이 고작 950만 원에 불과했다.

여 대표는 "일반 도서관에서 책은 대여해주는 소모품에 불과한데, 문화재인 고서를 맡길 순 없다"며 "세계 유수 도서관들도 이미 박물관처럼 변화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국공립기관이 책박물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박물관이 생긴다면 언제든 제가 가진 고서를 기증할 마음이 있어요. 대신 문화재 구입도 계속 해야 하고 전시, 출판, 국제교류, 연구 등도 활발히 하는 박물관이 설립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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