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어떻게 조선을 '착취의 나라'로 만들었을까

'유교'는 어떻게 조선을 '착취의 나라'로 만들었을까

박다해 기자
2016.03.01 08:01

[따끈따끈 새책] '두 얼굴의 조선사',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500년을 드러내다

유교문화를 토대로 '효(孝)'와 '충(忠)'을 강조했던 조선왕조. 누군가는 '도덕이 꽃 핀 나라'라고 하고 누군가는 '기개있고 청렴한 선비의 나라'라고 일컫는다.

500여년 동안 이어진 조선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장기 존속 왕조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돌아보고 본받아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로 조선을 접했을 것이다. 우리 문화의 우수함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 많은 역사교과서는 이 부분에 집중한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역사가 있다. '두 얼굴의 조선사'는 '애국심'이란 꺼풀을 벗겨내고 조선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고른 인재 등용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무엇보다 집안과 인맥과 뇌물을 중시했던 과거제도, 공명정대한 대의를 내세우지만 신분에 따라 철저히 다르게 적용되는 법제도, 못 가진 이들을 한계치까지 쥐어짜던 군역과 조세제도까지.

저자는 엄격한 신분제 위에서 폐쇄적으로 세습된 양반의 특권을 이용해 '착취의 정치'가 어떻게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특히 그는 계급정치 유지를 위해 지배층이 '도덕정치 이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온 데 주목한다.

'군자가 다스린 나라' 조선에서 사회의 가치와 규범에 스며든 유교윤리는 사실 철저히 오히려 신분차별과 지배층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장치로 작동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과도한 예(禮)와 명분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고 힘없는 백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돼버린 것.

그가 밝히는 조선의 모습은 어쩐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체 인구의 10%임에도 불구하고 관직과 토지를 독점한 양반층은 군역 등 각종 의무에서는 면제됐다. 양반 관료의 범죄를 다루는 의금부를 따로 둬 형벌에서도 특권을 누렸다.

법과 관행이 소수 관료의 특권을 위해 존재하다보니 자연히 학자들은 관료의 좁은 문을 들어가기만을 꿈꿨다. '과거 급제'라는 일말의 희망은 극도의 사회 부패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작용을 했고 사람들이 현실을 비판하는 대신 순응하고 노력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과거제 역시 응시자의 신분과 배경을 엄격한 잣대로 걸러냈음에도 말이다.

가문 내 위계적인 권위를 지키기 위해 17세기 이후에는 '남녀차별'과 '장자우대'란 관습이 생겨났다. 또 가문 전체를 서열화하기 위해 부계 중심의 가계 계승 의식이 발달하면서 '여성의 도구화'라는 기형적인 현상도 발생했다.

조선의 지배층은 민중의 비참한 삶과 울부짖음을 끝내 돌아보지 않는다. 1910년 일본 정부가 한일병합을 발표하며 500년 왕조의 끝을 예고했을 때 그들은 '대한제국 황제 즉위 4주년 기념식'을 열고 연희를 즐겼다.

저자가 펼쳐내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새로운 계급론을 읊조리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비치기 때문이다.

"영원토록 이 나라 사람이 되지 않겠다" 부조리한 권위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개탄하며 울부짖었다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차좌일의 말에는 '헬(hell)조선'이라고 자조하며 '탈출'을 꿈꾸는 2030세대의 목소리가 녹아있는 듯하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고 이를 토대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 '두 얼굴의 조선사'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두 얼굴의 조선사=조윤민 지음. 글항아리 펴냄. 368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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