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새책] 김민섭 '대리사회'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며 나의 신체를 되찾는다. 무엇보다 사유하고 발화할 자유를 되찾아 온다. 더 이상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주체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지방대 시간강사'가 대학을 떠나 1년을 '대리기사'로 살았다. 8년 동안 유령처럼 존재해 온 공간 대신 '세상'이란 거대한 강의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사회의 무수한 '대리인간'을 발견한다.
지난해 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펴낸 저자 김민섭씨의 신작 '대리사회'는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과 노동현장의 단면을 담았다. 생생한 묘사와 담담한 서술 틈새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며 살아가는 개인과 끊임없이 '대리인간'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의 모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는 우리가 모두 "한 사람의 대리운전 기사"임을 말한다. 마치 차의 주인인 것처럼 도로를 질주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전달되고 개인의 의지는 통제, 검열돼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삶의 주인'이라는 환상에 취해 산다.
'국가'는 대리인간을 양산해 온 주체다. 비합리와 비상식을 마주해도 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나기를 내심 바란다. 순응하지 않는 이들은 감시와 격리를 통해 걸러낸다. 자신들의 욕망을 대리할 '대리국민'은 그렇게 끊임없이 양산된다.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부하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한다.
저자는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결국 끊임없이 불편해 하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려면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믿으며 타인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대통령 역시 누군가의 '대리인간'일 뿐임이 밝혀지면서 좌절과 분노가 한국 사회를 덮었다. 대리사회가 만들어낸 권력의 정점에서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3번의 대국민 담화 속에서도 스스로 사유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저자가 묘사한 전형적인 '대리인간'의 모습이 비친다.
"주체성을 잃어버린 대리인간은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며 패배가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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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지닌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리고 말한다. "갑의 욕망을 위한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위한 주체로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고. 매 주 토요일, 광장에 모이는 촛불의 움직임이야말로 '국민'으로서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시작일지 모른다.
◇ 대리사회=김민섭 지음. 와이즈베리 펴냄. 256쪽/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