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도 신기술로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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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경기)=김고금평 기자
2020.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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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베트남 유학생 9명+현지인 관계자…베트남의 ‘한국 사랑’ 허와 실

대진대 한국어센터에서 유학 중인 베트남 학생들. 이들은 "박항서 감독 덕분에 베트남이 무시받던 나라에서 존중받는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포천=김고금평 기자
대진대 한국어센터에서 유학 중인 베트남 학생들. 이들은 "박항서 감독 덕분에 베트남이 무시받던 나라에서 존중받는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포천=김고금평 기자

햇수로 2년,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며 이룬 수많은 기록들 사이로 한국을 향한 베트남의 구애 행보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베트남 현지에선 ‘박항서 신드롬’을 계기로 ‘K스포츠’가 K팝·K드라마에 이어 주류 한류로 떠올랐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현지인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스포츠에 대한 인지도가 커지면서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갑자기 불어닥친 베트남의 ‘한국사랑’, 피할 수 없는 대세일까. 한국에 유학 온 베트남 학생들과 베트남 현지인을 통해 그 실체를 살펴봤다.

지난 20일 대진대 한국어센터. 이화선 한국어 강사가 담임을 맡은 중급반 베트남 학생 9명이 처음 만난 한국 기자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한 학생이 “베트남인들은 원래 안녕하세요,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며 “한국 문화에 이미 ‘적응’했다”고 말했다.

대진대 한국어센터에서 유학중인 베트남 학생들은 평균 1년 6개월 정도 한국어 수업을 받았다. 이화선(오른쪽) 강사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생활해보니, 현지에 있을 때보다 한국 이미지가 더 상승했다"며 "한국 문화를 더 경험하고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포천=김고금평 기자
대진대 한국어센터에서 유학중인 베트남 학생들은 평균 1년 6개월 정도 한국어 수업을 받았다. 이화선(오른쪽) 강사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생활해보니, 현지에 있을 때보다 한국 이미지가 더 상승했다"며 "한국 문화를 더 경험하고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포천=김고금평 기자

◇ 현지 유학생들 “박 감독 덕분에 베트남, 무시에서 존중”

화제는 자연스레 ‘박항서 감독’으로 옮겨갔다. 학생들은 “우리는 사실 박항서 감독을 잘 모른다”고 했다. 한국어 수업을 받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베트남 현지에서처럼 낱낱이 파악하기 힘들다는 게 그들의 전언. 하지만 중요한 경기가 있거나 박항서 감독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 뉴스에 오르내릴 땐 빠짐없이 함께 모여 시청한다고 했다.

학생 9명은 평균 1년 6개월 정도 한국에 머물렀다. 그들이 그간 느낀 한국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응웬티짱(여·26)은 “박 감독 덕분에 우리 모두 자신감이 커졌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요즘 베트남 사람들에겐 전통이 하나 새로 생겼어요. 축구 경기할 땐 어김없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오토바이 타고 응원하는 문화가 그래요. 그전에는 보기 힘든 단결, 단합, 자부심이 생긴 셈이죠. 무엇보다 박항서 감독 덕분에 우리나라가 유명해졌어요. 우리나라가 가난한 나라여서 많은 나라들이 무시했는데, 박 감독 덕분에 이젠 존중해주거든요.”

인터뷰 도중 한 학생이 박항서 감독의 형상을 조각으로 새긴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포천=김고금평 기자
인터뷰 도중 한 학생이 박항서 감독의 형상을 조각으로 새긴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포천=김고금평 기자

박 감독 얘기가 나오자, 쩐반황(22)은 “보여줄게” 있다며 TV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베트남 조각가 쩐 꾸억황이 박 감독을 존중해서 만든 나무 조각 영상을 유튜브로 틀면서 “우리 곁을 지켜 준 하나의 수호신 이미지”라고 소개했다. 그는 “박 감독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은혜가 많기 때문에 절대 버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팜티칭(여·25)은 60년 만에 첫 금메달을 딴 동남아시아(SEA) 게임에서 박 감독이 도중 퇴장한 일을 두고 “그 순간 너무 기뻤다”며 “우리 선수들을 위해 한 일이어서 더 감동적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K스포츠’ 계기로 한류 다방면 ‘호감’…“폐습도 긍정의 문화로 수용”

학생들은 한국에 대한 선호도를 ‘축구’에 국한하지는 않았다. 응웬 반황(20)은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 골수팬. 김치를 즐겨 먹고 빅뱅 노래 들으며 한국 유학을 꿈꾸자, 부모도 비용을 보태며 흔쾌히 허락했다.

팜티칭은 “한국은 개나리도 있고 단풍도 있고 눈도 있는 곳이어서 정말 아름답다”고 했고 부티휘엔짱(여·22)은 “신호등 잘 지키고 안전해서 좋다”고 했다.

한류가 낳은 여파는 학생들의 미래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만끄엉(26)은 2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뒤 베트남에 있는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고, 투웬은 베트남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응웬 꾸앙끄엉(22)은 한국의 디자인에 반해 디자이너를 꿈꾸고 쩐반황은 한국 맛에 빠져 영양조리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부티휘엔짱과 짠티 휘엔(22)은 관광경영학과에 들어가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할 계획이다.

이화선(오른쪽) 강사가 담임을 맡은 대진대 한국어센터 중급반 베트남 학생들. /포천=김고금평 기자
이화선(오른쪽) 강사가 담임을 맡은 대진대 한국어센터 중급반 베트남 학생들. /포천=김고금평 기자

10년 전쯤 동남아시아인들에게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폐습에 가까웠지만, 지금 베트남인들에겐 배워야 할 신기술로 통한다. 투웬은 “베트남은 미국, 프랑스, 일본과 전쟁에서 다 이긴 똑똑한 민족”이라며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화선 강사는 “베트남 현지인보다 한국 유학생들이 가지는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더 큰 것 같다”며 “직접 살면서 느끼는 문화 이질감에 대한 해소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상승 넘어 대단결 정신 구축” VS “막연한 호감 지수 늘 뿐, 조심스러워”

베트남 현지 분위기는 어떨까. 베트남 세종학당에 다니는 마이안(여·35)은 “기존에 베트남 사람들은 영화나 음악 등 한류로만 한국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며 “박항서 감독이 온 이후부터 한국에 대한 화려한 이미지는 베트남인들의 대단결 정신을 구축하는 이미지로 승화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세종학당 회화반의 레 응웬 민 타오(여·24)는 “박항서 감독의 활약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건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도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다만 박 감독 덕분에 올라간 한국에 대한 이미지 상승이 한국 열풍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베트남 하노이 세종학당 한국어 교육 수업 장면. /사진제공=세종학당
베트남 하노이 세종학당 한국어 교육 수업 장면. /사진제공=세종학당

정종권 베트남 세종학당 소장은 “박 감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곽세희 하노이 세종학당장은 “현지 분위기는 박 감독 덕분에 한국에 대한 막연한 호감 지수가 올라가는 모양새”라며 “실제 한국어 열풍을 이끄는 주역은 한국 기업이고, K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내 세종학당 수는 2014년 8개에서 2019년 15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수강생도 2014년 3899명에서 올해 9800명에 이른다.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한국어 열기가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하나로 중국(29개)에 이어 2번째로 세종학당이 많은 지역이다.

이 열기를 주도한 배경에 박항서 감독을 빼놓을 수 없지만, 한국어 열풍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한국 기업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곽세희 세종학당장은 “하노이 지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초봉이 평균 600만 동(약 30만원)인데, 한국어과를 졸업한 학생들의 경우 초봉이 1000만동(약 50만원)을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현지에선 영어를 배우면 초봉이 베트남어보다 1.3배, 한국어를 하면 1.6배 정도 높은 셈이다.

◇한국 기업의 연봉지수+박항서 감독 호감지수 ‘상승효과’

베트남 거점 세종학당 세종문화아카데미 K팝 댄스 수업. /사진제공=세종학당
베트남 거점 세종학당 세종문화아카데미 K팝 댄스 수업. /사진제공=세종학당

하지만 한국과 한국 문화, 한국어 열풍은 단순히 어느 하나의 잣대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2018년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베트남 양국 간 상호 방문객의 증가는 박항서 감독의 영향으로 ‘스포츠 한류’ 열풍이 불고 있고 이를 통해 패션, 미용 등 다른 한류문화콘텐츠의 선호도도 높아짐으로써 구매력 있는 베트남 국민의 방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 한국관광공사가 2018년 국가별 방한 외래관광객 현황을 분석한 결과 베트남 방한객 수는 2017년 대비 41.0%로 가장 크게 증가했으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 및 인식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류의 인기 정도를 나타내는 한류현황지수 측정결과에서도 베트남은 조사대상 29개국 중 6위를 차지했다.(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2016)

이화선 강사는 “현재 베트남 인구의 50%가 30세 이하인데, ‘파파’로 불릴 정도로 박 감독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 상승과 신뢰도에 중요한 기준점이 됐다”며 “베트남 현지인과 한국 유학생의 한국 선호도는 한국 기업의 연봉 지수와 박 감독의 호감 지수가 낳은 상승효과에 맞물린 측면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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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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