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은 이미 많다. 그럼에도 '암살자(들)'은 영부인 저격 사건이라는 소재에 허진호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더해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의 완급을 절묘하게 조절한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임에도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이유다.
특히 기자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기자는 내면은 뜨겁지만 기사는 차가워야 하는 존재다. 소명의식과 열정을 품고도 이를 기사에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 특히 1970년대에는 지면의 한계까지 있어 수많은 이야기 중 중요한 것만 골라 핵심을 전달해야 했다.
영화 속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분)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 분)은 이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약자를 돕는 뜨거운 인물들이지만, 영화는 이들을 단순히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로 그리지 않는다. 뜨거운 내면과 달리 기사 앞에서는 냉정해야 하는 기자의 본질을 보여준다. 무엇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순간들에서 오히려 이들의 열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찰 철구(유해진 분)는 기존 경찰 캐릭터와 결이 다르다. 철구의 아내(엄지원 분)는 "당신의 소명을 다해요"라며 지지하기보다 "우리 애한테 무슨 일 생기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라며 가족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철구는 아버지이자 경찰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암살자(들)'은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공포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액션과 드라마, 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적 변주도 능숙하다.
초호화 배우 라인업 역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주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배우 한 명 한 명을 보는 즐거움이 있고, 의문의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정체에 대한 긴장감을 높인다.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의 놀라움까지 재미를 배가한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영화는 마냥 속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할 수 없다. 이에 영화는 거대한 사건 자체보다 그 안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집중했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기자'를 이토록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는 점에서 더 반가웠다. 영화를 보며 기자라는 직업을 다시금 돌아보게 됐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직업에 대한 존중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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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시대상을 재현하는 과정도 정성스럽다. 이처럼 '암살자(들)'은 수많은 외화 속에서도 한국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한국 영화만이 지닐 수 있는 경쟁력을 보여준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2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