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준 씨가 귀국했다. 엄밀히 말하면 ‘한ㆍ미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송환된 것이다. ‘범죄인 인도조약’이란 한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도망간 사람을 그 외국에 요구하여 다시 범죄지의 나라로 송환되게 하여 형사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간에 체결된 조약이다.
그런데 모든 범죄혐의자가 다 인도되는 것은 아니고 인도를 요구받은 국가의 형법상 어느 정도 중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는 인도를 거절할 수도 있다는 ‘이중범죄성립(double criminality)’의 원칙이 적용된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김경준 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승인을 결정을 내리면서 380여억원의 횡령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사실상 김경준 씨의 혐의가 중대함을 인정했다.
사실 김경준씨의 경우 수백억원대의 사기로 수천명에게 고통을 준 범죄혐의로 한국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으로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한 사안이니 미국에선들 가볍게 취급되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김경준 씨가 마치 금의환향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 있는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당당하게 들어왔다. 고통 받고 있는 수천명의 사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갖가지 해석이 분분한 것 같다.
김경준씨는 요즘 대통령 후보자들이 저마다 자처하는 ‘경제전문가’ 이다. 김경준씨는 미국 코넬대 경제학 학사,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모건스탠리에 들어가 '30대 투자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아비트리지(차익)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죽은 동생 이름으로 여권까지 위조했다는 것을 보면 ‘비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경제전문가’앞에 붙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비도덕적 경제전문가’는 필요한 경우 범죄행위를 선택하기도 하는 데 범죄(사기)로 인한 이익과 그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는 불이익(형벌)을 항상 합리적으로 비교ㆍ형량한다.
이를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미국으로 빼돌린 수백억원의 돈이 범죄(사기)로 인한 이익이고 그에 따를 수 있는 형벌, 행동의 제약, 명예의 하락, 범죄로 인하여 취득한 재산의 몰수 등이 불이익인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가 항상 체포되어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범죄인들은 자신이 절대로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과신한다. 그런데 경제전문가인 김경준씨는 체포의 위험도 합리적으로 고려하면서 범죄로 인한 이익은 가장 크게 하고 범죄로 인한 불이익은 가능한 최소화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범죄로 인한 이익을 보다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횡령한 돈을 미국으로 빼돌렸고 출국 금지를 당하자, 죽은 동생의 이름으로 여권을 위조, 미국으로 도피하는데도 성공했다. 한국 정부의 미국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로 말미암아 2004년 5월 체포된 뒤에도 ‘인신보호’ 청구를 법원에 제기해 송환에 응하지 않고 미국에서 버텨왔다.
그러던 그가 더 이상의 인신보호청구 절차를 포기하고 돌연 한국 송환에 응했다. 그 이유는 그의 말 대로 미국에서의 `민사 소송이 끝나서`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는 아직 몇 개의 민사소송이 계속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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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연 한국에 온 이유는 두 차례 인신보호 신청이 기각돼 더 버텨봐야 실익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김경준씨 변호사 말 대로 모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불리한 재판을 받을 것이 예상돼 정말 맨 땅바닥보다는 진흙탕에 부딪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을 불과 한 달 남겨 놓은 시점에서 경제전문가인 그가 돌연 웃으면서 귀국을 선택한데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김경준씨가 아무래도 자신을 ‘킹 메이커’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그는 합법과 불법, 네게티브와 포지티브 방식을 항상 고려해 왔으므로 대통령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만들든 포지티브 방식으로 만들든 상관할 바 아니다. ‘킹 메이커’는 그저 ‘킹 메이커’일 뿐으로 지금처럼 모든 한국인이 그를 주목하는 것을 어떤 영웅심리와 더불어 또 다른 이익으로 계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5년 전 김대업씨 사건으로부터 배운 바도 있을 것이다.
그가 공항 문을 나서며 `와우`라는 탄성을 지르면서 바라본 수 많은 군중들, 아니 대한민국의 3700만 유권자들의 정치 수준을 조롱하면서 향후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이 자신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자신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익을 챙기려 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오로지 김경준씨 입을 주목하고 김경준씨 사건에만 매달리면서 대선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김경준씨의 계산이 대한민국에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매우 염려되는 상황이다.
그 계산에는 비록 가능성은 적지만 대선 후 ‘불이익(형벌)’을 줄여줄 수 있는 사면과 복권의 확률이 고려됐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