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WTO와 OPEC의 상충관계

[MT시평]WTO와 OPEC의 상충관계

류병운 홍익대 법대 교수
2008.03.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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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사장과 임직원들이 새 정부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그들 상당수가 낙하산 코드 인사로 그 자리를 차지했으므로 코드가 전혀 다른 새 정부에서는 정해진 임기와 상관없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몸통과 일부 손발이 서로 맞지 않는데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코드부조화 문제는 국제기구 사이에도 존재한다. 세계 무역 자유화를 추진하고 관리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회원국들의 원유생산 및 수출량을 조절해 국제유가의 가격카르텔을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서로 전혀 코드가 맞지 않는다.

단지 관세만을 무역의 장벽으로 인정하고, 그 관세율의 점진적 축소를 지향하는 WTO의 기본법인 GATT 제11조는 수입 및 수출에서의 양적 규제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WTO의 설립 이전인 1988년 ‘일본 반도체의 반경쟁적 관행’에 대한 보고서도 GATT 제11조가 수입에서는 물론 수출의 양적규제의 금지까지 포괄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러므로 회원국의 산유량을 통제하는 OPEC은 WTO와 서로 상충하는 국제기구이다.

 

더구나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베네수엘라는 OPEC 회원국이지만, 또한 WTO 회원국이므로 당연히 수출입에서의 ‘양적규제 금지’의 의무를 진다. 이들 국가들은 석유 수출의 통제가 GATT 제21조의 국가안보에 근거한 예외나 제20조 g호의 ‘고갈되어가는 천연자원’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항변하나 법적 논리와 설득력이 미약하다.

 

고유가로 신음하는 세계경제 상황을 외면한 채, OPEC은 최근 정기회의에서도 생산량 동결을 결정했다. 지난해 OPEC은 원유 수출을 통해 6760억 달러 벌어들였다. 이중 사우디아라비아가 거둔 수익만도 1940억 달러에 이른다. 또한 금년에는 90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OPEC은 고유가 정책의 유지가 세계 석유 소비량을 감소시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임으로써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마치 늘어나는 비만인구의 다이어트를 위해 세계 식량 공급을 줄여야겠다는 식이다. 고유가 가격카르텔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오뉴월 옷고름 짝에 솜 놓아 주면서’ 생색을 내는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고유가로 OPEC가 재미를 톡톡히 보니까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구 소련 국가들이 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인 이란과 더불어 천연가스 가격과 공급을 담합하는 또 하나의 카르텔 기구를 형성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뛰는 것이다.

 

그런데 OPEC의 석유수출량 규제를 통한 가격 카르텔이 항상 주효했던 것은 아니다. 회원국의 암시장을 통한 석유판매 등으로 OPEC의 생산량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던 1997~99년경에는 원유가 배럴당 10달러를 조금 상회하여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중국과 인도의 석유소비량 급증이 일부 초과공급를 상쇄해가자 어느 때보다 OPEC의 결속력도 공고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대량의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미국의 신용경색으로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상승형 인플레이션으로 그 핵심적 원인은 원유가격의 급등이다.

 

만일 현재의 OPEC의 가격 카르텔을 깨뜨린다면 국제유가는 얼마나 내려갈까? 이 경우 국제 원유가가 배럴당 평균 29달러 정도였던 2004년 기준 2.20달러 하락한다는 한 미국 의회 보고서의 예측과 단순 비교할 때 현재의 유가를 약 9달러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현재의 고유가의 상당한 부분이 석유공급애로에 대한 예상에 근거한 투기수요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다소의 공급확대만으로도 상당한 폭의 가격하락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OPEC은 이라크를 제외하고 약 6%이상의 생산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새 정부는 다각도로 자원 확보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한다. 이라크 한국군 철수문제도 원유자원확보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바탕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아울러 WTO를 중심으로 한 세계무역자유화에 외교력을 집중하면서 OPEC의 가격카르텔 구조를 깨는 노력과 추가적인 자원 공급통제 기구의 출현을 막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비산유국의 서글픔을 토로할 시간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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