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의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두 번의 낙마' 지난 연말 KB금융지주회사 회장 내정자에서 전격 사임한 강정원 국민은행장 얘기다.
새해 들어서도 강 행장의 회장직 사퇴를 둘러싸고 관치금융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무법적 은행회장 사퇴 공작'이라는 비난 마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회장에 내정된 그가 금융감독당국의 고강도 감사가 진행되자 돌연 "더 이상 회장 선임 절차에 참여하는 것은 주주와 고객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사퇴했기 때문이다. 강 행장은 외부의 압력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외압 때문에 사퇴한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관치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강행장도 한 때는 관치금융의 수혜자(?)였다. 시계추를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 2000년6월1일. 강 행장은 선진금융의 전도사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서울은행장에 취임, 최연소 시중은행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당시 정부 고위관계자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의 관습과 관행을 타파해 서울은행을 우량은행으로 키우겠다는게 취임 일성이었다.
강행장은 취임후 세븐-일레븐(7시출근-11시 퇴근), 행장실 축소와 수행비서 폐지 등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같은 개혁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2년11월10일 임기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년4개월만에 행장직에서 물러났다. 감사원이 경영정상화 계획 불이행을 이유로 예금보험공사에서 문책을 요구,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당시 강 행장의 방만한 업무추진비 등을 문제삼은 투서가 접수돼 감사원이 감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 2004년10월8일. 서울은행장 퇴임후 2년 가까이 금융계에서 잊혀졌던 그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통합국민은행 2대 행장으로 내정된 것이다. 당시 행추위는 강행장이 새로운 은행장이 갖춰야 할 자격요건 6가지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그 6가지는 △조직통합을 위한 강력한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한 체력과 에너지 △주주 중심 경영에 대한 신념 △국제감각과 경험 △대규모 조직관리 경험 △금융기관 특히 은행경영의 전문성 △국내 금융시장과 경영여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경험 등이다.
행추위는 특히 시장자율로 뽑은 첫 행장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함량미달이라며 행장 출근저지와 불복종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 2009년12월8일. 강 행장은 마침내 KB금융지주회사 회장에 내정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선임과정의 불공정과 사외이사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됐고 결국 그는 20여일만에 회장 내정자 자리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독자들의 PICK!
관의 추천으로 최연소 시중은행장이 된 후 10년만에 관의 압력으로 리딩뱅크 회장 내정자에서 사임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 것이다. 강 행장의 10년을 보면 한국 금융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선진금융, 금융허브는 말 뿐이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관치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관치를 허용(?)하는 한국 금융의 나약함이 아닐까.
금융 자율화와 선진 금융은 누가 떠다 먹여주는게 아니다. 시장이 인정할 만큼 금융자율화를 꾀하고 선진 금융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다면 관치가 개입할 수 없을 것이다. '관치금융의 수혜자, 희생자'라는 말은 강 행장이 마지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