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하는 진료비를 '비급여 진료비'라고 한다. 정부는 병ㆍ의원으로 하여금 이 비급여 진료비 내역을 의무적으로 환자가 보기 쉬운 곳에 공개토록 하는 제도를 지난 달말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실시된 첫날인 31일 홈페이지와 병원 내부에 비급여 진료비를 제대로 게시한 병ㆍ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격을 비교해 병원을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소비자들은 허탈할 수 밖에 없었다.
병원들은 오히려 큰소리쳤다. 종합병원의 경우 비급여 진료항목이 많게는 9000여개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공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수가체계가 의사들의 행위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 비급여 진료 항목과 가격을 모두 나열해도 환자가 자신의 총 진료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복지부가 사전에 기준을 세우고 용어 등을 정리해줬어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10월에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한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 외국인환자 유인알선행위가 허용되기 전 전국적으로 설명회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과 대조된다.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지난 8일 대한병원협회 등에 오는 4월 30일까지 3개월 간 계도기간을 주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그때까지는 지키지 않더라도 시정명령이나 업무정지 15일 등의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상 준비부족을 인정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준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범위가 너무 다양해 할 수 없었다"며 "제도가 정착되면 시장원리가 작동해 점점 환자들이 알아보기 편하게 바뀌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만 개정한다고 끝이 아니다. 모범 예시를 만들어주거나 준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듣고 대안을 마련해주는 시도가 선행됐어야 했다. 규제 당사자인 의료기관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채찍 들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군림하는' 공무원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