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정부가 얼마전 탈세 창구로 파악된 은행 상품이나 계좌 등에 등록된 사람의 명단을 포괄적으로 다른 나라에 제출할 수 있는 '그룹리퀘스트' 법을 제정했다.
아울러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계좌를 보유한 명단을 국제탐사보도협회(ICIJ)가 입수해 공개를 타진 중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대 전기가 마련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세수확대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인 터라 는 이같은 환경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해당 정보를 수집하고 국부를 유출한 인사들에게 세금 철퇴를 내려야 할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못해 '방관'에 가까워 보인다.
상호주의가 원칙인 국가 간 정보교환을 위해 우리도 '그룹리퀘스트' 관련 법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정책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는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세정보를 확보해 직접 세금 징수에 나서야 하는 국세청도 마찬가지다. BVI에 계좌를 보유한 인사들의 명단 확보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와 만나주지 않는다"라는 말만 한 달 넘게 되풀이 중이다. 숫제 언론에서 먼저 입수해 공개해 주길 바라는 눈치다. ICIJ가 정부와 상대를 하지 않고 언론과만 접촉한다는 이유다.
지난해 7월 영국 비정부기구(NGO)인 조세정의네트워크가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40년 간 우리나라에서 해외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무려 7790억 달러(약 850조 원)에 이른다.
이에 반해 국세청이 지난해 역외탈세로 적발한 추징액은 8258억 원 수준이다. 2008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새로운 조사기법을 도입하고, 관련 법 개정과 예산확보에 발빠르게 나서야 역외탈세를 적발하고 세수를 확대할 수 있다는 건 누구보다 정부 관계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역외탈세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 자세는 여전히 '슬로 모션'으로 비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