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키스'는 서류를 묶을 때 쓰는 문구다.
원래 이름은 '스테이플러'라는데, 부르는 사람 마음이다. 묶인 서류에 의미가 있지 묶는 도구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책브리핑 현장. 한 경제부처 고위공무원의 입에서 호치키스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기재부가 바로 호치키스 부처"라고 했다. "다른 부처 아이디어를 다 가져다가 척 묶어 내놓고는 생색은 혼자 다 낸다"는 볼멘소리였다.
기재부도 할 말은 있다. 부총리급 정책조정부처의 역할론이다. 현장의 아이디어까지 모두 취합할 수 있는 시간도 인력도 없다. 부처에서 보내온 정책을 분석, 키울 것은 키우고 줄일 것은 줄이는 조율을 통해 제대로 된 경제정책으로 만드는 것이 기재부의 역할이라는 거다.
다른 경제부처들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기재부가 정책의 공로까지 독식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책의 마침표가 기재부의 예산투입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책 수립 과정에서 각 부처의 공로는 뒤로 밀리고 브리핑 현장서 마이크를 잡는 현 부총리만 부각된다는 지적이 그간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렇다 보니 경제부처들은 정책을 요구하는 기재부의 전화가 올 때마다 골머리를 싸맨다. 고심 끝에 알맹이 없는 내용만 기재부의 호치키스에 던져준다. 공을 들인 알짜 정책은 슬그머니 숨겨둔다. '우리 장관'이 직접 발표하거나 대통령에게 직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연스럽게 기재부나 국무조정실,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호치키스 부처가 묶어 내는 정책은 언제부턴가 위력이 약해진다. 그나마 예산을 틀어쥔 기재부는 사정이 좀 낫지만 국조실이나 공정위가 이 부처 저 부처 정책을 묶어 내는 자료는 재탕 삼탕으로 더 맥이 빠진다.
호치키스는 결국 칸막이와 같은 말이다. 당장 내달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혁신도 규제도 새로울 게 없는데 기재부에 뭘 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부처 간 역할 분담에 대한 이해와 공을 나누려는 태도가 없다면 3개년 계획에서도 알짜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