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가 예산정보 유출 사건은 정국을 흔들지 못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업무추진비(업추비) 사용내역을 공개했지만 '폭탄급'은 없었다. 청와대, 기획재정부는 기민하게 대응했고, 주도권도 여권으로 점차 넘어갔다.
예고편보다 본편이 재미없는 격이었지만 심 의원의 문제 제기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청와대, 정부가 업추비를 어떻게 썼는지 낱낱이 알려진 경우는 이전까지 거의 없었다. 희소성있는 정보였다. 심 의원이 습득한 예산정보의 가치가 부풀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1년에 두 차례 공개하는 업추비 내역은 매우 제한적이다. 2018년도 상반기 청와대 업추비 집행 내역 중 관계기관 정책 협의비를 보면 6058회에 걸쳐 8억9028만원을 집행했다.
개별 회의 명칭이나, 사용금액, 참석자, 장소 정보는 없다. 적절한 곳에서 경우에 맞게 나랏돈을 썼는지 알 수 없다. 다른 집행 내역도 마찬가지다. 안하는 것보다 낫지만 의미 있는 공개라 할 수 없다.
각 부처는 장·차관 업추비를 월별로 공개한다. 건별로 금액과 주제는 기재하지만 장소, 참석자 정보는 없다. 장·차관 비서실이나 실·국장 등 고위 간부들의 업추비 집행 내역은 공개 대상이 아니다. 공공기관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관장 업추비 집행 내역만 공개하는데 구체적이지 않다.
청와대, 정부가 업추비를 때마다 어느 식당·술집·상점에서 얼마나 썼는지 자세하게 알렸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심 의원실 보좌진이 우연히 예산정보를 발견했더라도 기재부의 반환 요청에 응하지 않았을까. '김동연 안마의자' 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 각 부처 실무자들은 기재부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업추비 집행 내역을 일일이 되짚어봐야 하는 '귀찮은 일'이 주어졌기 때문. 그 덕에 업추비를 더 엄격하게 사용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업추비 공개 범위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심 의원이 만든 변화다. 생큐, 심재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