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백신공화국, 무엇을 남겼나①

"오늘은 우리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첫발을 내딛는 날입니다."
2021년 11월 1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이던 권덕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단계적 일상회복'의 시작을 선언했다. 근거는 70%를 넘긴 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률이었다. 국민 절대 다수가 접종을 하면 이른바 '집단면역'이 생겨 대규모 유행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백신 도입이 국가 최대 과제가 됐고, 미접종자의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방역패스'까지 가동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백신에 대한 믿음으로 쌓아올려진 '백신 공화국'은 흔들리고 있다.
1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달 28일 기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대응력을 높인 개량백신 접종률(동절기 접종률)은 인구 대비 1.6%에 그친다. 접종률은 차수를 거듭할 수록 수직낙하하고 있다. 1차 접종률은 87.9%, 2차 접종률은 87.1%였지만 3차 접종률은 65.6%, 4차 접종률은 14.7%로 내려갔다. 현재 1%대에 머물고 있는 개량백신 접종률은 4차 보다도 크게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접종률 추락은 백신에 대한 국민 인식 변화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지난 9월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백신혁신센터 천병철 교수팀이 실시한 '코로나19 백신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이 효과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1.9%로 절반을 조금 넘었다. '정부에 의해 제공되는 모든 백신은 유익하다'에 동의한 비율은 39%, '백신 제공자(정부, 제약사 등)로부터 받는 백신에 대한 정보는 신뢰할 만하다'에 긍정적 응답을 한 비율은 40.7%에 그쳤다.
이 같은 설문조사와 1년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사이의 골은 깊다. 당시 절대 다수였던 1차 이상 접종자들 가운데 77%가 방역패스 도입에 찬성했다. 백신이 감염 예방에 효과적이며 미접종자들은 감염과 전파의 위험이 높아 방역패스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게 국민 다수의 인식이었던 셈이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의 백신 접종 수용도는 해외와 비교해도 높았다. 우리나라가 국민 접종률 70%를 달성한 지난해 11월 무렵, 우리보다도 접종을 먼저 시작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접종률은 56.5~69% 수준이었다.
지난 1년 사이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면, 백신에 대한 국민 인식 변화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오미크론 변이가 유입되며 확진자가 걷잡을수 없이 불어났고, 국민 항체양성률 조사를 통해 추산된 이른바 '숨은 감염자' 약 1000만명까지 합하면 이제 전 국민의 약 70%가 코로나19에 한 번 이상 감염됐다. 지난해 이맘때 정부가 일상회복 추진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접종률 70%'였는데 이젠 그만큼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셈이다. 백신에 대한 신뢰가 1년 전과 같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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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혁 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접종률이 높았음에도 지난 2~3월 대규모 유행이 발생했다"며 "결국 백신을 접종해도 군집면역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접종 후 예상보다 빨리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나며 접종자가 감염되는 '돌파감염'이 빈번히 발생했고,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부스터샷'(추가 접종)이 개발돼 접종 차수가 3차, 4차로 가는 'N차접종'이 진행됐다. 반면 코로나19는 백신으로 형성된 면역을 보다 쉽게 피하는 방향으로 계속 진화했다.
백신 공화국은 누군가에겐 죽음이 됐다. 기저질환이 없던 건강한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이 접종 후 사망하는 사례가 나왔다. 남은 가족들에게는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라는 벽이 또 다른 상처가 됐다. 완벽하지 않은 백신을 '믿고 맞은' 결과이기도 했다. 김두경 코로나19 백신피해자 가족 협의회 회장은 "우리는 처음부터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며 "믿고 백신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공화국의 어두운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 코로나19의 치명률은 사실상 독감 수준이 됐다. 바이러스가 변이를 겪으며 독성이 반감된 이유도 있지만, 백신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통계로 입증된다. 질병관리청의 예방접종 효과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달 15일 기준, 3차 접종 후 확진자는 미접종 확진자에 비해 중증(사망 포함)으로 진행할 위험이 95%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2차 접종 후 확진자도 중증 진행 위험이 67.9% 낮았다. 애초에 중증 예방은 감염 예방 이상으로 백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효과였다.
한국의 백신 기술력이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우리보다 먼저 백신을 개발한 외국의 백신을 위탁받아 생산하며 단기간에 끌어올린 기술력을 발판으로 국산 코로나19 백신이 탄생했다. 아직 코로나19 국면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산 백신은 최소한의 안전판이 된다. 물량 배정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기에 지난해와 같은 전 세계적 백신 공급부족 사태가 와도 대응할 여지가 생긴다.
백신 사각에 놓인 저개발국 공급에 물꼬를 틀 수도 있게 됐다. 우리 과학기술이 세계 보건에 기여할 수 있을 만큼 올라섰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보건복지부와 세계보건기구(WHO)의 공동 주최로 열린 제1회 '2022 세계 바이오 서밋'에서 "대한민국은 올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고 생산된 백신을 필요 국가에 제공함으로써 백신의 공평성 보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은 결국 불완전한 백신을 과학으로 보완해 국민 건강에 더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백신 공화국이 남긴 숙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한 첫 단 추는 코로나19 백신 뿐만 아니라 백신 공화국을 겪으며 형성된 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것 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조두형 영남대학교 약리학교실 교수는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을 겪으면서 독감 백신도 안 맞겠다는 백신 불신 풍조가 늘었다는게 의학적인 '실'이다"며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과 관계를 확인해 부작용을 겪은 분들의 손해를 책임지는데서부터 불신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상혁 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부작용 관련,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엉뚱한 판단이 나와서도 안된다"며 "객관성을 가지는 평가체계를 먼저 법제화 해야 하며 보상체계는 비단 코로나19 백신뿐만 아니라 국가예방접종 사업이 전부 포함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