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급한 불을 껐다. 1500원을 위협하던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개입 의지와 수급 개선 기대감이 맞물린 결과다. 당분간 안정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안심하긴 이르다. 환율 하락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구조적 요인이 여전해서다. 달라진 경제 체력을 감안하면 '환율 1400원'은 위기가 아닌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6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3.5원 하락한 1442.2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4일 1437.9원을 기록한 이후 한달 반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 소식에 이날 장중 최저 1429.5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변곡점은 지난 24일이었다. 정부의 고강도 대책 발표 당일, 환율은 하루 만에 39.2원 폭락했다. 3년 1개월 만의 최대 하락폭이다. 1480원 돌파 직후 나온 정부의 승부수가 시장에 먹혀들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달러의 귀환'이다. 해외로 나간 돈을 국내로 돌리는 데 방점이 찍혔다.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세제지원 △개인투자자용 선물환 도입 △해외자회사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률 상향 등이 골자다.
RIA는 '서학개미'를 겨냥했다.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주식에 1년간 투자하면 해당 해외주식 양도세를 면제해 준다. 개인용 선물환은 환헤지를 통한 외화 유출 방지책이다. 배당금 세제 혜택 역시 기업의 해외 자금을 국내로 유인하려는 포석이다.
정부 메시지는 선명하다. "강력한 의지와 실행 능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환율이 다시 튀면 언제든 개입하겠다는 경고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처방이 원화 약세 심리를 차단하는 데 효과를 냈다고 평가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외환수급 대책이 그 동안 한 방향으로 쏠려있던 원화 약세 심리를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민연금 환헤지까지 본격화되면 실제 수급 측면에서도 환율 하락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거시경제 환경도 우호적이다. 내년 초 미국의 새 연방준비제도(Fed)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대감은 달러 약세 요인이다. 일본의 금리인상에 따른 엔화 강세가 원화 가치를 동반 견인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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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국내 채권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도 호재다.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이 유입되면서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업계에서는 최대 50조~70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1400원 시대'는 상수가 될 공산이 크다. 한미 금리차 역전 고착화, 대외금융자산 확대 등 구조적 환경이 변했다. 과거의 잣대로 지금 환율을 위기로 규정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 외화유동성이 상당히 안정적이고 단기 부채가 잘 관리되고 있어 환율 상승이 과거처럼 위기로 연결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신용도에 문제가 없다면 지금 고환율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팬데믹 이전과 달라진 구조적인 요인들이 이미 원화 환율의 균형점을 크게 높여 놨다"며 "내년에도 환율 수준에 대한 눈높이는 여전히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