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대통령, 못 따라가는 공직사회] (下)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02.24.](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3/2026030822312664106_1.jpg)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물가·교육 등 생활 밀착 현안을 직접 언급하고 정책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부 부처에서는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 지시가 이어지면서 기존 정책 일정과 부처 내부 정책 발굴 동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세제 정책이다. 통상 정부는 매년 7월 세법개정안 발표를 기준으로 연간 정책 일정을 짠다. 각 부처가 사전에 정책 과제를 발굴해 재정경제부와 협의하고 입법 일정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이 SNS(소셜미디어)나 국무회의 등을 통해 부동산 세제나 생활물가 문제 등을 수시로 언급하면서 정책 검토 요구가 잇따르자 실무 부처에서는 대응 부담이 커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제부처 간부급 공무원 A씨는 "대통령이 특정 분야를 콕 집어 지적하면 관련 부처가 그 방향으로 집중하게 된다"며 "대통령의 타깃이 되는 분야의 주무과는 업무 과부하가 상당히 심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관심 사안으로 지목될 경우 해당 정책은 지속적인 관리 대상이 돼 중간 보고·점검이 이어지면서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국무회의 운영 방식 변화에 따른 부담도 크다. 경제부처 공무원 B씨는 "국무회의가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어떤 이슈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고 한 번 언급되면 해당 과나 담당자가 급격한 업무 과부하에 걸린다"며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오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사안이라도 바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폭탄 돌리기처럼 업무 부담이 부서 사이에서 이동하는 느낌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지시에 대응하는 업무가 과중되면서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정책을 발굴해 올리는 '바텀업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처 내부 정책 기획 역량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부처 공무원 C씨는 "국정과제 채택 이후 모든 사안은 범부처 추진단 중심으로 돌아가고 실무 부처는 세부 집행이나 제도 정비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라며 "대통령이 정책을 전반적으로 컨트롤하고 부처는 지원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의 정책 추진 방식이 이전 정부보다 훨씬 세밀하고 정책 추진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교복 가격이 60만원에 달한다"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자 교육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곧바로 교복 가격 구조 점검에 나서는 등 신속한 대응이 이어진 것이 대표 사례다.
공직사회도 점차 이 같은 정책 추진 방식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경제부처 간부급 공무원 D씨는 "윤석열 정부 때보다 정책을 훨씬 디테일하게 챙기는 편"이라며 "생리대 가격부터 부동산, 주식시장까지 특정 포인트를 집어 지적하면 바로 성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의 PICK!
이어 "대통령 메시지가 강할수록 정책 방향이 분명해지고 관계 부처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 E씨도 "현 정부 들어 정책 추진 텐션이 높고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통령이 정책 방향을 직접 제시하면서 공직사회 긴장도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연달아 다주택자와 투기·투자용 1주택자에 대한 대출규제를 언급하면서 관계 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숨가쁘게 움직였다.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다주택자 규제가 언론에 보도되자 이 대통령은 좀더 고강도 대책이 필요하다며 X를 통해 실시간 피드백까지 했다. 톱 다운 방식의 규제 주문에도 다주택자 대출 통계가 없는 금융위는 속도를 내지 못해 '진땀'을 뻬기도 했다.
6일 정부 부처와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다주택자의 대출 만기 연장 관행을 '직격'한 이후 금융위 담당 공무원들은 3주간 수차례 대책회의를 소집하며 숨가뿐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투기용 다주택자에 금융혜택을 주는 건 문제가 있다"(2월13일)고 지적하자 해당 대출이 정확히 어떤 대출을 말하는지부터 초기 혼선이 빚어졌다. 다주택자 대출은 지난해 6·27 대책에서 이미 금지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14일 곧바로 은행과 상호금융 가계대출 담당 임원을 소집해 주로 주거용 임대사업자 대출로 대상을 좁혀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만기 일시상환 대출이면서 대출 만기가 3~5년으로 짧은 임대사업자 대출이 이 대통령의 발언 취지에 부합하는 대출이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임대사업자 대출 만기 연장시 '갚을 이자 대비 임대료 수입 비중'인 RTI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일차적으로 검토했다. RTI가 1.5배가 되지 않으면 신규 대출이 제한되는데 이 기준을 '공평'하게 기존 대출에도 적용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검토안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왜 RTI 규제만 검토하냐"며 만기에 대출을 회수하거나 원금 분할 상환을 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피드백을 내놨다. 추가적인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인 와중에 나온 속전속결 피드백에 공무원들은 진땀을 흘렸다.
다주택자의 아파트 담보 대출 위주의 대책이 나올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이 대통령은 또 '투자·투기용 1주택자'에도 규제를 주문(2월26일)한다.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범위가 더 넓어졌다. 금융위 사무처장 주재 대책회의는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격상됐다. 이달 4일 네 번째 회의가 열렸다.
'톱 다운' 규제 주문에도 금융위는 3주 동안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정확한 다주택자 대출 통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나 국세청이 보유한 다주택자 정보와 은행이 갖고 있는 대출 정보를 매칭해야 하는데 대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법리적인 해석도 필요하다. 다주택자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 대책이 필요하단 타부처 지적에 '속도전' 못지 않게 '세밀한 정책'에도 방점이 찍혔다.
그러는 사이 기존에 예정했던 정책 발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금융위는 당초 지난달 말 올해 연간 가계대출 정책 방향과 목표치 등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연기됐다.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어느 정도로 설정하지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됐으나 2개월이 지나도록 공개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대출 정상화 방안과 합쳐 동시 발표하는 안도 검토 중이다.
물론 '일 잘하는 부처'인 금융위에 대한 이 대통령의 칭찬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X에서 금융위가 자본시장 범죄 신고포상금 지급 상한을 전면 폐지한 것에 대해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님, 잘 하셨다. 팔자 고치는데는 로또보다 확실히 쉽다"며 공개 칭찬했다.
'톱 다운' 방식의 정책 주문에 피로감이 없지 않지만 금융위 공무원은 "대통령의 메시지 자체가 정책 효과로 연결돼 시장이 바로바로 반응하고 있다"며 "힘 실린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급격히 쏠리면서 장관들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정부가 각 부처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책임 장관제'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현 정부의 장관들은 '정책 설계자'보다는 '정책 실행 책임자'로서의 성격이 짙어지는 모습이다.
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최근 관가에선 장관의 정무적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축소됐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 정책의 큰 줄기와 담론의 키를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게 쥐면서 장관들은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정책으로 구체화해 성과로 만들어 내느냐가 주요 역할이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속도전' 의지에서 비롯된다. "공무원의 1시간은 국민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는 대통령의 철학에 따라 각 부처는 정책의 숙성보다는 '즉각적인 반응'과 '가시적인 성과' 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관들은 정책을 설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전통적 리더'가 아닌 현안을 꼼꼼히 챙기는 '실무자형 리더'로서의 움직임이 강조된다.
변화된 기류는 국무회의나 부처 업무보고 풍경마저 바꿨다. 주요 회의가 생중계되면서 장관들은 전 국민 앞에서 자신의 실무 역량을 가감 없이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대통령의 송곳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하고 전문성을 드러내는 것이 장관 역량 평가의 핵심 척도가 된 셈이다.
업무 강도도 상당하다. 이 대통령은 현재 국무위원 및 청장급 70여명이 참여하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실시간으로 업무를 지시하고 현안을 묻고 있다. 대통령이 현안을 물으면 장관이 직접 실시간으로 답하는 구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늦은 밤은 물론 새벽에도 텔레그램에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 장관들이 항상 휴대전화를 쥐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디지털 국정 소통' 속도에 발을 맞추는 것도 주요 일과가 됐다. 실제 현재 공석인 기획예산처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제외하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등 대부분 장관이 X(엑스·옛 트위터)를 개설했다. 눈에 띄는 점은 장관들이 이 대통령의 X 활용이 본격화 한 지난 1월 23일 이후 본격적으로 X 개설에 나섰다는 점이다. 한 장관은 "기존에 X를 사용하지 않았다 보니 낯설긴 하다"며 "열심히 X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관들도 이 대통령의 속도전에 점차 적응해가는 모양새다. 교복 가격 문제와 같은 생활 밀착형 현안에 대해 대통령 지적 이후 관련부처가 유기적으로 후속조치에 착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대통령도 최근 싱가폴·필리핀 순방 복귀 이후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구 부총리와 이억원 금융위원장 등이 '중동상황 관련 경제분야 합동 비상대응 방안'과 '금융시장 분야 합동 비상대응 방안' 등을 보고하자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재명 정부의 '초속도 행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단기 현안 해결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연금·노동·교육 등 긴 호흡이 필요한 구조개혁 과제에 대한 추진동력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대통령이 믿는 사람들로 임명했으면 장관 중심으로 정책이 집행되고 운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국가적 마스터플랜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원석 세종대 국정관리연구소 연구교수도 "대통령의 지시로 정책 내용이 왜곡될 수 있어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며 "국무회의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의 권한과 책임이 장관이 아닌 대통령에게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