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초과이익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이 거둔 막대한 이익을 분배보다는 성장을 위한 재투자에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 주장이 제기된다. 초과이익의 정의 자체가 모호할 뿐더러 생존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통상부는 15일 노동계와 경영계, 산업 분야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AI 시대의 기업 투자와 노동의 미래'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기업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최근 반도체 초호황으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백조원대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를 사회·경제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업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하기 보다는 미래 성장을 위해 재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AI 시대 기업 이익 생산적 활용방안'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변동성이 크고 투자실패 위험성이 큰 반도체 산업 특성상 기업의 초과이익은 미래 수익을 위한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우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통상적 수준을 벗어나는 것은 맞지만 경제학적으로 어디까지를 초과이익으로 볼 것인지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주요 기업들이 수백조원 단위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요소다. 안 교수에 따르면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설비투자(capex)는 351조원으로 예상되며 2030년에는 44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안 교수는 "초과이익의 정의에 상관 없이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내부자금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이익 변동성이 높은 산업 특성상 향후 손실이 날 때도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만큼 막대한 이익이 날 때 이를 미래 투자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초과이익 재분배의 근거로 제기된 반도체 공공재론에 대해서도 학문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들어 반도체가 안보자산화, 전략자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에 필수적인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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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 교수는 "반도체는 공공재의 특성인 비경합성, 비배제성 원칙에 어긋난다"며 "전기·용수와 같은 인프라가 공공재"라고 설명했다.
분배 문제에 있어서도 근로자와 주주 간 분배와 초과세수의 분배는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과세수 분배는 정부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지만 근로자와 주주 간 분배는 기업 내부에서 결정할 사항으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근로자나 정부의 과도한 보상 요구는 주주들의 위험회피 성향을 강하게 만들어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인프라 구축과 보조금 지급 등을 세전이익 분배의 근거로 제기하기도 하지만 인프라는 각종 세금과 비용으로 기업이 이미 지불했고 보조금은 지급받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AI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유연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동욱 고려대 교수는 'AI 시대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제고를 위한 노동법제 개선방안' 발제를 통해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현재의 노동법제는 AI·반도체 패권경쟁이라는 속도전 속에서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 보호라는 명분이 신규 채용과 투자 유인을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근로자에게 손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변화속도가 빠르고 기술주기가 짧은 반도체·AI 산업 특성상 인력전환, 재배치, 고용 등에서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경직된 고용구조 속에서는 제대로 된 산업 수요 대응이 어렵다고 봤다. 또한 지금과 같은 연공서열 방식의 임금체계로는 치열한 인재 유치 경쟁에서 매력적인 보상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김 교수는 노동유연화를 위한 방안으로 △고도 전문직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 적용제외 △경영상 해고 요건의 명확화 △파견법 개정을 통한 인력 유연화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임금체계에서는 직무급·성과급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노동유연화를 위해선 근로자에 대한 재훈련, 전직지원 등 사회안정망 확충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유연화 논의는 반드시 사회안전망 확충과 짝을 이뤄야 한다"며 "고용보험 기금 내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특화 재훈련 계정을 신설하거나 산업 간 인력 매칭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