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청 원예원, 사과·참외·양파 품질정보 통합…저장·출하 판단 과학화
경험 의존하던 산지유통에 데이터 기준 제시…내년 11개 품목으로 확대

사과는 나무에서 따낸 뒤에도 숨을 쉰다. 가지와 잎을 떠났지만 호흡을 계속하고 수분을 잃으며 조금씩 늙어간다. 농민의 손을 떠났다고 사과의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또 다른 관리가 시작된다. 아무리 잘 키운 사과라도 저장과 유통 과정에서 상품성을 잃는다면 한 해 농사의 결실은 온전히 보상받기 어렵다.
어떻게 보관하고, 언제 시장에 내놓느냐에 따라 맛과 신선도, 상품가치가 달라진다. 한 해 동안 농민이 흘린 땀의 값어치가 수확 이후의 관리에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농산물의 '수확 이후'에 주목한 이유다.
농촌진흥청은 21일 사과·참외·양파의 수확 전후 품질정보를 통합한 웹 기반 '품질백서'를 구축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던 농산물의 저장·출하 판단에 객관적인 데이터 기준을 마련한 것이 핵심이다.

산지유통센터(APC)는 대개 먼저 들어온 농산물을 먼저 출하하는 '선입선출' 방식을 활용한다. 그러나 먼저 입고된 사과가 반드시 먼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확 당시 상태와 저장 온도, 보관 방법에 따라 상품성을 유지하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품질백서는 품종과 재배환경, 수확 당시 품질, 저장 방법 등을 연결해 품질 변화와 저장 한계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입고 순서보다 품질 저하 가능성을 따져 출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현장 관리자가 품질이 빨리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물량을 먼저 내보내고, 저장 기간이 남은 물량은 적정 시점까지 보관하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사과는 저장 중 무게가 5%, 8% 감소하는 시점을 상품성 판단의 기준선으로 제시했다. 기체조성 조절(CA) 저장을 적용하면 일반 저온저장보다 출하가 어려워지는 시점을 65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내놨다.
참외는 저장 온도별 갈변율과 손실률을 분석해 적정 온도로 10℃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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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는 수확 후 예비 건조(큐어링)를 거쳐 0℃에서 7개월간 저장할 경우, 무처리 양파보다 중량 감소율은 54.3%, 싹이 트는 비율은 55.1%, 부패율은 66.3% 낮아졌다.

농산물을 평가하는 기준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지금까지 크기와 무게, 색깔 등 겉모양이 중시됐다면 앞으로는 맛과 신선도를 더 객관적으로 살피자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당도·산도·경도 등의 측정 방법을 표준화하고, 사과 당도 측정 오차를 0.17브릭스에서 0.05브릭스로 낮췄다.
사과의 바탕색 영상을 분석해 단맛과 신맛의 균형인 당산비를 판별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스마트 APC에 인공지능(AI)과 로봇을 들여놓더라도 품질을 판단할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없다면 정밀한 선별은 어렵다. 품질백서는 그 기준을 만드는 기초공사다. 품질정보의 기준을 통일했다는 의미도 있다.
농진청은 올해 현장 실증을 거쳐 2027년 상반기 적용 품목을 11개로 늘리고 대국민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소규모·고령 농가까지 쉽게 활용하고 실제 유통 손실 감소와 농가소득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김대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농업기술의 출발점이라면, 그 가치를 소비자의 식탁까지 지키는 일은 농업기술이 완성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라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품질백서가 될 수 있도록 현장 중심 데이터를 계속 채워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