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만 열여덟의 나이에 걸그룹 다이아로 데뷔한 정채연은 한동안 조용한 아이돌로 머물렀다. 열정과 패기는 빛났으나 팀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그는 2016년 행운 같은 기회를 만난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1에서 국민 프로듀서들의 눈에 띄며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오아이의 최종 멤버로 발탁된 것이다. 백옥 같은 피부와 가늘게 흘러내리는 눈매,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오묘한 분위기는 곧장 ‘당신의 소녀’로 정채연의 또렷한 인장을 남겼다.
아이오아이 활동을 끝낸 뒤 그는 다시 다이아로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무대 위에서의 성과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신 정채연은 아이돌의 궤적 바깥에서 배우로서 자신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다져나갔다. 2016년 tvN ‘혼술남녀’에서 공시생 역할로 첫 정극 신고식을 치른 뒤, ‘다시 만난 세계’(2017), ‘아이엠’(2017), ‘투 제니’(2018), ‘첫 사랑은 처음이라서’(2019)를 거쳤다. 이어 사극 ‘연모’(2021), 판타지 ‘금수저’(2022), 가족극 ‘조립식 가족’(2024)까지 한 발 한 발 차곡차곡 경력을 쌓으며 아이돌의 한계를 넘어 배우로서의 궤적을 이어갔다.
이러한 축적의 시간은 정채연을 단순히 ‘청초한 얼굴’이 아닌,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배우로 만들었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꺼내 놓으며 성실히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는 결국 JTBC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이하 ‘에스콰이어’) 속 변호사 강효민으로 연결된다. 이제 그는 소녀의 껍질을 벗고, 전문직 캐릭터를 통해 성장과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

정채연이 ‘에스콰이어’에서 맡은 강효민은 법무법인 율림 송무팀의 신입 변호사다. 속독이 가능할 만큼 언어 감각이 뛰어나고 이해력이 남다른 인물로, 집중하면 주변을 잊을 정도지만 그만큼 지각과 실수도 잦은 캐릭터다. 철저한 시간관념을 지닌 상사 윤석훈(이진욱)의 눈에 처음엔 탐탁지 않게 보였으나, 효민은 위기마다 순발력과 진심을 발휘해 송무팀의 일원으로 합류한다.
입사 초반에는 허술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사건을 겪으며 선배들의 멘토링 속에서 점차 다듬어지고 단단해진다. “의뢰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포부를 품은 효민은 시행착오 끝에 점점 진짜 변호사로 거듭나며 시청자들에게 성장 드라마를 선사한다.
정채연의 행보를 돌아보면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걸그룹 활동의 화려함보다 연기자로서의 단계를 밟아온 성실함,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새 도전을 이어온 태도. 강효민의 서툼과 성장은 정채연이 지나온 과정과 겹쳐 보인다.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매번 다른 얼굴을 만들어내며 성장해 가는 모습은 배우와 배역의 교차점에서 더욱 빛난다.
‘에스콰이어’는 정채연에게 있어서 변곡점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부딪히며 단단해지는 강효민처럼, 부단함으로 배우로서의 무대를 확장했다. 그 연기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정채연은 더 이상 가능성에 머무는 얼굴이 아니다. 수년간 과정을 밟아온 끝에 도착한, 자라난 배우의 얼굴이다. 이번 작품이 증명한 건 단순한 도전의 결과가 아니라 꾸준히 성장해 온 한 배우의 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