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서준이 지난 11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익숙한 로맨스의 얼굴을 조금 다르게 꺼내 보였다. 스무 살의 첫사랑에서 서른여덟의 현재까지, 18년의 세월을 한 인물 안에 담아내야 했기에 사건보다 감정의 결이 더 중요했던 작품이다. 박서준은 극 중 연예부 기자라는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을 바탕으로 사랑 앞에서만은 유독 진심인 인물의 시간을 밀도 있게 쌓아 올렸다. 외적인 변화보다 미묘한 성숙의 차이를 설득력 있게 쥐며 이전 로맨스물과는 다른 결의 감정 연기를 보여줬다.
"'경도를 기다리며'는 그동안 했던 로맨스물이랑 성격이 많이 달라요. 18년이라는 서사를 표현해야 해서 감정의 깊이감이 중요했죠. 사건 중심이라기보다는 인물 감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표현 방식이 더 중요했거든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묘하게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는 걸 어떻게 보여줄지, 감정 전달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경도를 기다리며'는 세 개의 시점을 오가며 인물의 시간을 되짚는 구조다. 박서준은 그 흐름에서 이경도라는 캐릭터를 과장 없이 일정한 톤으로 관통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특히 연예부 기자라는 설정을 직업적이기보단 인물의 성격과 태도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활용했다.
"저한테는 연예부 기자라는 설정보다 경도의 성격이 더 중요했어요. 경도를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봤거든요. 그래서 한결 같은 정장 차림, 평범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옷차림은 뭔가 품이 크고 촌스럽지만 괜찮아 보일 수 있는 정장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조 블랙의 사랑'에서 브래드 피트가 입었던 정장이 인상 깊어서 거기서 착안해 표현해 봤어요."

로맨스의 무게를 함께 끌어올린 상대 배우 원지안과의 호흡도 빼놓을 수 없었다. 박서준은 현실적인 나이 차(11살)가 있는 만큼 초반에는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원지안이 보여준 차분한 태도와 깊은 톤이 불안을 빠르게 지워줬다고 했다.
"현실적인 나이 차가 있다 보니까 걱정하긴 했죠. 근데 실제로 만나보니 매우 차분하고 깊고, 목소리 톤에서 오는 성숙함이 있더라고요. 재밌었던 건 같은 대본을 보는데도 상대가 어떻게 연기할지 늘 궁금하잖아요. 리허설 때 맞춰보면 되게 신선했어요. 여기서 내가 리액션을 잘하면 장면이 더 풍성해지고 새로운 느낌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이런 장르는 남녀 배우 분량이 대부분이라 둘이서 다 채워나가야 하니까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한 신 한 신 같이 만들어갔어요."
박서준은 이경도의 감정선을 크게 흔들어 보여주기보다 최대한 눌러 담는 쪽을 택했다. 처연함이 필요한 장면일수록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한 줄의 시처럼 조용히 내려 앉히는 방식이 어울린다고 봤다. 결국 눌러 담은 감정선과 과하지 않은 톤이 이경도의 진심을 더 깊게 전달하는 장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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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만 봤을 때는 '경도 멋있다, 강단 있다' 싶었는데 막상 촬영할 때 뱉으려니까 유치한가 싶은 순간이 있더라고요. 저는 항상 연기할 때 담백함을 추구해요. 느끼하고 과한 걸 싫어해서 자칫하면 느끼해질 수 있는 대사를 어떻게 하면 담백하게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리고 감정신도 순간순간 다 달랐다고 생각해요. 처연해야 하는 장면은 마치 시 한 구절 읊조리는 것처럼 가야 한다고 느꼈고, 대신 감정이 올라온다고 해서 막으려고 하진 말자고 했어요. 다만 슬플 수 있는 장면이면 오히려 참아야 더 슬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했죠."

연예부 기자를 연기하게 된 소회에 대해서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신인 시절 신문사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도 했다.
"연예부 기자라는 직업이 다행히 멀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예전에 신문사 찾아가서 인터뷰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그리고 감독님이 사회부 기자 출신이다 보니까 오피스 구현을 정말 잘하셨더라고요. 저로서는 오피스에 앉아 있는 역할 자체가 처음이라 되게 신선했고, 여러 가지로 재밌었어요. 경도라는 인물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 공간 안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아, 이 사람은 이렇게 하루를 보내겠구나' 하는 감각이 조금씩 생겼던 것 같아요."
박서준은 대학생 경도부터 서른여덟의 경도까지 이어지는 변화를 말투와 호흡, 감정의 속도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는 "제가 동안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름 중학생 때랑 (외모가) 비슷하다(웃음). 그래서 스무 살 때 저를 많이 떠올려보면서 그때 말투라든지 표현 방식을 고민했다. 스무 살 때는 좀 더 어눌하지 않았을까, 그때다운 느낌은 뭘까 계속 고민하면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경도를 기다리며'가 처음 방송(2025년)되던 현재 시점의 나이(38세)는 박서준의 실제 나이이기도 했다. 한 해가 지나면서 39세로 서른의 끝자락에 섰다. 곧 40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지금이랑 똑같이 지날 것 같아요. 번아웃이 좀 왔었는데 1년을 딱 쉬니까 돌아오더라고요. 지금은 개인적으로 에너지가 상당히 좋아진 시기 같아요. 예전에 한참 뒤 안 돌아보고 달릴 때처럼, 어쩌면 그것보단 조금 더 평안해지고 받아들이는 게 무겁지 않게 된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쉬지 않고 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