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 넘어선 압도적 퀄리티의 14곡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1번 트랙 'Body to Body'(보디 투 보디)는 왜 이 앨범의 이름이 '아리랑'인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의 선율 일부를 녹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트랙들부터 전개되는 앨범의 방향성은 제목이 주는 예상을 기분 좋게 배반한다. 타이틀곡 'SWIM'(스윔)은 심지어 가사 전체가 영어로 쓰였다. 가장 한국적인 제목을 내건 앨범의 타이틀 가사가 영어라는 점은 언뜻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역설이야말로 지금의 방탄소년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방식이다.
이들은 이번 앨범에서 외부의 시선이 규정한 얄팍한 '한국성'에 얽매이는 대신, 가장 자신다운 것에 집중했다. 일곱 멤버가 끝내 닿는 뿌리는 분명 한국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전 세계 팝 시장의 최정점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팝스타다. 세계의 언어인 영어로 노래하며 글로벌 팝의 문법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지금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인 방탄소년단'의 현재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정체성이다.
어떠한 틀 밖에서 삶의 거친 파도에도 멈추지 않고 전 세계의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SWIM') 자신들의 현재 진행형 서사 위에, 이들은 '아리랑'이라는 거대한 뿌리의 깃발을 꽂았다. 가장 사적이고 로컬한 한국인의 정서가 전 세계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는 것. 방탄소년단은 기꺼이 '아리랑'을 표방하며 그 묵직한 명제를 음악으로 입증해 낸다.

총 41분 27초의 러닝타임, 촘촘하게 수록된 14개의 트랙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이 앨범이 품은 또 하나의 거대한 맥락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의 태생적 뿌리가 한국이라 '아리랑'을 앨범명으로 택했다면, 팀의 음악적 뿌리는 '힙합'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초반부 트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Dynamite'(다이너마이트), 'Butter'(버터) 등 장르를 초월한 메가 히트 팝 트랙들로 전 세계에 각인돼 있지만, 이들이 처음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표방했던 것은 사회를 향해 날 선 비트를 내뱉는 거친 힙합 그룹이었다. 1번 트랙 'Body to Body'부터 5번 트랙 '2.0'까지 이어지는 전반부는 이들의 기저에 흐르는 힙합 DNA를 노골적이고도 세련된 방식으로 분출한다.
이 힙합의 향연은 맹렬하다. 2000년대 팝 랩의 거친 에너지를 터뜨리는 'Body to Body'를 시작으로, 깊게 깔린 808 베이스 위로 타격감 있는 랩을 쏟아내는 얼터너티브 힙합 'Hooligan'(훌리건), 묵직한 808 비트와 미니멀한 전개가 돋보이는 힙합 알앤비 'Aliens'(에일리언스)가 쉴 틈 없이 청각을 타격한다. 여기에 끓어오르는 열기를 터뜨리는 하이퍼 저지 'FYA'를 지나, 변칙적인 트랩 리듬 위로 "You know how we do"라며 여유로운 스웨그를 내뱉는 '2.0'에 이르기까지. 일곱 멤버는 초반 다섯 트랙을 온전히 날 것의 힙합 사운드로 꽉 채워 청자를 완벽하게 기선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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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번 트랙 'No. 29'에 이르러 앨범은 강렬한 자극 뒤에 찾아오는 더없이 고요한 여백을 마련한다. 거침없는 힙합 사운드로 전반부를 휩쓴 방탄소년단은 대한민국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의 그윽한 종소리를 기점으로 앨범의 공기를 완벽하게 전환시킨다.

이 웅장한 숨고르기를 지나 마침내 당도하는 7번 트랙, 타이틀곡 'SWIM'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다. 전반부의 팽팽한 긴장감을 걷어낸 자리에 따뜻한 일렉트릭 기타와 로파이 신스 사운드가 채워진다. 밀려오는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유유히 나아가겠다는 이 얼터너티브 팝 트랙은, 평양냉면처럼 슴슴하지만 깊은 맛을 낸다.
애써 증명하려 핏대를 세우는 대신, 삶의 파도를 담담히 헤엄쳐 가겠다는 성숙한 태도는 거친 파도 속을 살아가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묵직한 위로이자 찬가로 다가온다.
타이틀곡을 기점으로 한결 유연해진 앨범의 후반부는 강을 지나 한층 넓은 바다로 뻗어 나간다. 사이키델릭 록('Merry Go Round'(메리 고 라운드)), 애시드 하우스('One More Night'(원 모어 나이트)), 소울 팝 록('Into the Sun'(인투 더 선)) 등 다채로운 팝의 장르를 넘나드는 동안, 이들은 일상의 공허함, 사랑, 연대 같은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결국 '아리랑'은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이 어디서 출발해(한국과 힙합), 어떤 파도를 넘어(SWIM),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글로벌 팝)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하고도 거대한 자서전이다. 한국이라는 뿌리에서 시작한 41분 27초의 항해 끝에, 방탄소년단은 다시 한번 전 세계를 향해 손을 내민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지금, 우리와 함께 헤엄칠 준비가 되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