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의 '바람' 속편 '짱구'로 돌아온 정우
주연부터 제작·각본·공동 연출까지 '1인 4역' 소화
서툴고 민망했던 무명 시절 웃음과 진정성으로 풀어내
"돌아가신 아버지 꿈도 배우…같은 꿈 꾸며 살 수 있어 감사해"

'비공식 천만 영화'로 불리며 수많은 청춘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영화 '바람'의 주인공 짱구가 무려 16년 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고등학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한복판으로 내던져진 20대 청춘의 짠내 나는 서울 생존기다.
배우 정우가 다시 한번 짱구를 연기한 영화 '짱구'는 2000년대를 배경으로 배우가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부산 사나이 짱구의 좌충우돌 도전기와 현실의 벽을 담아낸다. 99번의 오디션 낙방과 팍팍한 자취 생활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청춘의 에너지가 유쾌하면서도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특히 이번 작품은 배우 정우가 주연뿐만 아니라 각본, 제작, 공동 연출까지 1인 4역을 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뼈대로 삼은 만큼, 무명 시절 겪었던 치열한 오디션 경험과 20대의 성장통이 영화 곳곳에 짙고 리얼하게 배어 있다. 10대 시절의 치기 어린 에피소드를 다뤘던 전작과 달리, 20대의 현실적인 불안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덧입혀 한층 성숙하고 새로운 결의 청춘 공감을 끌어낸다. 카메라 안팎을 오가며 자신만의 서사를 온전히 통제하고 빚어낸 정우의 뚝심과 다재다능한 영화적 역량이 고스란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개봉을 앞두고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돼요. 복합적인 감정이긴 한데 사실 처음에는 배우로만 참여했을 때랑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좀 더 남다르긴 해요. 카메라 안에서의 경험만 쌓아가다가 카메라 밖에서의 경험을 이번에 처음 하게 됐는데, 궁금했던 것들의 궁금증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배우로만 참여했을 때 몰랐던 현장의 분위기와 스태프들의 마음을 이번에는 조금 더 알게 됐죠. 영화의 만듦새에 있어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와 결이 잘 맞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달았죠."

정우가 '짱구'를 자전적인 이야기로 끌어온 방식은 의외로 담담했다. 스스로를 영웅화하거나, 지나온 시간을 미화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툴고 우스꽝스러웠던 시절의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며, 그 민망함과 절박함을 동시에 영화 속에 녹여냈다. 그래서 '짱구'의 오디션 장면들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그 웃음 밑바닥에 꿈을 좇던 청춘의 초라한 진심을 함께 남긴다.
"마냥 꿈만 꾸던 시절에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잘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살아왔겠죠. 그런데 그 모습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면 우스꽝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접근으로 짱구의 초반 연기 모습을 담아냈어요. 그걸 유쾌하고 재밌게 풀어내는 게 오히려 덜 쑥스럽더라고요. 영화 '약속', '쉬리', '초록물고기' 같은 작품과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며 키운 꿈을 그대로 영화 안에 담고 싶었어요. 유쾌하고 재밌게, 하지만 진정성 있게 담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영화화의 결정적인 물꼬를 튼 것은 아내이자 배우 김유미의 지지였다. 가벼운 에피소드 나열 수준에 불과했던 이야기를 김유미가 흥미롭게 보면서 본격적인 영화화의 물꼬가 트였고, 이후 시나리오를 대여섯 번이나 엎고 각색하는 치열한 과정을 거쳤다. 정우는 억지스러운 시대적 고증에 얽매이기보다는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20대의 보편적 정서에 초점을 맞췄다. 사회로 나와 당장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던 청춘들의 근원적인 불안함과, 그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을 옮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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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으니 다른 결의 영화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짱구다운 게 뭘까 고민했죠. 정우가 짱구고 짱구가 정우인 건 맞는데, 또 짱구다움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제가 배우로서 어두운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거친 부분이 배어 있을까 봐, 이번에는 조금 더 익살스럽고 지질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현장에서도 더 친밀하고 친근하게 지내려고 했고, 그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20대 짱구를 소화하기 위해 정우는 내외적으로 혹독한 준비 과정을 묵묵히 견뎌냈다. 풋풋한 외형을 되찾고자 7~8kg을 감량하는 다이어트를 감행했고,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발성 톤을 끌어올렸다. 또한 특유의 생생한 사투리 맛을 살리기 위해 주요 배우들의 대사를 억양에 맞춰 직접 녹음해 전달하는 열정도 아끼지 않았다.
"신승호, 조범규 배우에게 제가 직접 대사를 녹음해서 전달했어요. 지역마다 사투리 억양이 조금씩 다르니까 그걸 맞추고 싶었죠. 두 친구 다 정말 훌륭하게 소화해 냈어요. (싱)승호는 부산 분들이 보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깔스럽게, 거의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장재를 연기해 줬고요. (조)범규는 오히려 오디션 과정이 더 힘들었을 거예요. 거의 백지상태에서 저와 함께 마지막 테스트 촬영까지 갔는데, 최종적으로 두 명이 남았고 결국 범규 씨가 됐죠. (김)유미 씨의 추천으로 오디션에 들어오게 됐는데, 범규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대안이 없었어요. 사실 범규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커서 캐릭터 나이대를 바꿨어요."
영화 속 짱구가 치르는 수많은 오디션 장면 중 마지막 독백 신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여운 깊다. 과거 '쉬리'의 최민식 대사로 서울예대에 합격했던 정우의 실제 경험담이자, 배우의 꿈을 끝까지 지지해 줬던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애틋한 추억이 짙게 서려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연기자의 꿈을 꿨던 아버지의 염원과 상경한 아들을 향한 노심초사가 영화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도 배우였거든요. 그래서 그 시절 작품들과 그 안의 독백들은 제게 더 특별하게 남아 있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제게 배우의 꿈을 키우려면 표준어를 익히고 서울에 가서 연기학원도 다니며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어요. 다만 어린 제가 혼자 서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을 걱정하셨죠. 그럼에도 제게는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셨어요. 어릴 때는 몰랐어요. 아버지와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인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해요.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누구보다 좋아해 주실 것 같아요."

정우에게 '짱구'는 과정의 영화다. 성공의 찬란한 결과보다 그 길로 향하는 불안하고 서툰 시간에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 정우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대단한 감동보다도, 자기 삶의 어느 구간을 떠올리며 작은 위로와 응원을 받아 가길 바라는 듯했다. 그리고 연출이라는 새로운 길 역시 지나치게 비장하게 붙들기보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출근하듯 즐겁게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은 어쩌면 짱구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뜻대로 안 풀려도, 생활처럼 버티며 계속 앞으로 가는 것. '짱구'는 바로 그 자세를 닮은 영화다.
"연출이 재밌는 것 같기는 해요. 제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면 또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계속해 볼 수도 있겠죠. 언젠가 30대나 40대 짱구의 이야기도 스크린에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거창한 의미를 두고 있진 않아요. 준비하는 과정도 재밌고, 후반 작업도 재밌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이 그러셨거든요. 오늘도 출근하고 내일도 출근하고 일 년 뒤에도 출근하는데 너무 몰두하면서 출근하지 말고 그냥 출근하자고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생활처럼 임하려고 하고 있어요."
'짱구'는 오는 2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