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부터 '와일드 씽'·'오십프로'까지, 열일로 증명한 전성기
"'모자무싸', 대본 한 자 한 자가 귀해 100% 구현 목표"
"내게 감정 워치가 있다면 '긴장'이 가장 많이 나올 것"
"'와일드 씽'서 100명 앞 노래, 가창 안 되는데 잘하는 척해야 해 부끄러웠다"

배우 오정세가 또 한 번 대중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최근 짙은 여운을 남기며 종영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열등감과 불안을 안고 사는 영화감독 박경세로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면, 오는 6월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에서는 39주 연속 2위에 머문 비운의 발라드 가수 최성곤으로 분해 극장가에 폭발적인 웃음을 예고하고 있다.
결핍을 안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부터, 절박함이 빚어낸 기막힌 코미디까지. 낯설고도 친근한 두 얼굴로 돌아온 오정세를 아이즈(IZE)가 만나 그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호평 속에 막을 내린 '모자무싸'는 오정세에게 시작부터 "귀하고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는 극 중 겉으로는 5편의 영화를 개봉한 성공한 감독이지만, 내면은 시기 질투와 초조함으로 얼룩진 박경세 역을 맡았다. 오정세는 박해영 작가의 텍스트가 지닌 힘을 온전히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한 자 한 자가 정말 귀했어요. 이 귀한 단어들을 제가 느낀 그대로 시청자에게 잘 전달해 드리는 연결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대본을 100% 구현하자'는 걸 1차 목표로 삼았습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제 입맛에 맞게 대사를 바꿀 수도 있지만, 편안함보다는 대본이 주는 뉘앙스와 정서를 있는 그대로 살리는 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고 판단했어요."

배우들과의 호흡도 연기의 밀도를 높인 결정적 요소였다. 특히 으르렁대면서도 묘한 애틋함을 자아낸 황동만(구교환)과의 '혐관' 케미에 대해 오정세는 "기본값은 서로를 가장 날카로운 칼로 긁는 사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진한 추억과 거대한 응원이 깔려 있다고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구교환 배우가 주변에서 걸어다니는 것만으로 동만 그 자체였어요. 그런 정서를 느끼게 하려면 얼마나 치열하게 했을까 싶더라고요. 뭘 안 해도 동만이 같아서, 뭘 해도 든든한 느낌이었어요."
아내 고혜진 역의 강말금과 만든 장면들도 오정세에게는 예상을 뛰어넘은 경험으로 남았다. 대본으로는 가볍고 귀엽게 읽혔던 장면이 현장에서는 여러 겹의 감정으로 확장됐다. 특히 혜진 앞에서 "3등만 할게"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경세의 자존심과 초라함, 그럼에도 용기 내어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뿅망치 맞는 신도 대본에서는 라이트하고 귀여운 신으로 읽었는데, 현장에서 강말금 배우가 머리를 때리는 순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러 겹의 감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슬픔도 있고, 되게 많은 감정이 오는 경험을 했어요. '3등만 할게'라고 고백할 때도 무덤덤하게 말하지만 경세의 마음은 엄청 뜨거웠고, 혜진 역시 뜨겁게 완성한 장면이었어요. 책에 나온 것보다 현장에서 둘이 리허설하다 보니 감정이 풍성해지는 귀한 경험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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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무싸'에서 인간의 취약한 내면을 섬세하게 어루만졌다면, '와일드 씽'에서는 오정세 특유의 천부적인 코미디 리듬감이 스크린을 장악한다. 그가 연기한 최성곤은 과거 무대를 주름잡던 버터 머금은 발라드 왕자에서 현재는 속세를 떠나 산속을 누비는 멧돼지 사냥꾼이 된 인물이다.
시놉시스만으로도 웃음이 터지는 설정이지만, 오정세는 코미디 장르일수록 더욱 예민하고 치열하게 접근했다.
"저는 코미디를 항상 더 예민하게 검열하는 편이에요. 작정하고 웃기려는 전략이 표면으로 드러나면 저 스스로가 너무 힘들거든요.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맞닿는 웃음을 찾으려 치열하게 의심하고 이것저것 시도해 봅니다. '와일드 씽' 역시 왜 자꾸 코미디에서 뒷걸음질 치게 될까 고민하던 찰나에 들어간 소중한 도전이었죠."

찰랑이는 장발에 새하얀 셔츠, 그리고 사냥꾼의 덥수룩한 비주얼 등 극단적인 콘셉트 역시 치열한 회의의 결과물이다. 오정세는 "여러 머리를 시도했는데 '킹받는' 느낌이라 단발로 결정했다"며 "발라드 가수의 과거와 멧돼지 사냥꾼인 현재가 시각적으로 차별화되면서도 지나치게 우스꽝스럽지는 않도록 톤을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극 후반 기적처럼 주어진 무대 위에서 군중을 앞에 두고 노래해야 했던 장면은 부끄러움을 안겨준 큰 도전이었다.
"현장에서도 사실 저는 가창이 되는 배우가 아닌데 100명 앞에서 노래해야 하니까 부끄러움이 있었어요. 녹음할 때는 기계적인 도움을 받지만 현장에서는 직접 불러야 하잖아요. 실제로는 가창이 좋게 안 나오는데 표정은 최고로 불러야 하니까 거기서 오는 부끄러움이 있었죠. 트라이앵글(강동원, 엄태구, 박지현)도 그랬겠지만 그들은 팀이라 의지할 데가 있었을 텐데, 저는 혼자여서 더 그랬어요(웃음)."
오정세가 본 박경세와 최성곤의 공통점은 실패감과 열등감이다. 다만 두 인물이 향하는 방향은 달랐다. 경세가 1등을 원하며 앞만 보고 달렸던 사람이라면, 성곤은 한때 무대 위에 있었지만 나락으로 떨어진 뒤 다시 찾아온 기회 앞에서 꿈을 향해 치고 나가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경세는 1등을 하고 싶어서 앞을 보는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곤은 예전에 자기 꿈을 위해 무대에 있다가 나락으로 갔는데 다시 꿈틀꿈틀하다가 기회를 만났을 때 그 꿈을 위해 막 치고 나가는 게 메인 정서라고 생각했고요. 마지막 무대 위에서는 신체적으로는 최대한 괴로움이 있었으면 좋겠고, 정서적으로는 희망이 있었으면 해서 그런 식으로 접근했어요."

작품을 고를 때도 하나의 기준만 따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떤 작품은 캐릭터가 탐나서, 어떤 작품은 감독과 작업하고 싶어서, 어떤 작품은 정서가 자신에게 닿아서 선택한다.
"작품마다 달라요. 이 작품의 '두잉'이 아니라 '비잉'에 욕심이 생기는 작품이 있고, 캐릭터가 탐나서 하기도 하고, 어떤 건 감독님이랑 하고 싶어서 하기도 해요. 또 어떨 때는 작품의 정서와 닿아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통점은 없어요. 제 모든 충족 요건에 맞는 걸 하기에는 너무 많으니까요."
오정세는 올해만 드라마 '클라이맥스', '모자무싸', '오십프로'와 영화 '와일드 씽'까지 쉼 없이 작품을 선보이며 다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작 요정'으로 불릴 만큼 꾸준히 카메라 앞에 서고 있는 그는, 자신을 계속 찾아주는 이유를 "쉽지 않은 배우"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쉽지 않은 배우라서 많이들 불러주시나 싶어요. 쉽게 쉽게는 안 해요. 계속 물어보고 인물을 만들어 나가요. 치열하게 뭘 하려는 배우여서 누군가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 치열함의 바탕에는 여전히 긴장이 있다. 오정세는 "저에게 감정 워치가 있다면 긴장이 가장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첫 촬영, 첫 자리, 새로운 시작 앞에서 그는 늘 긴장하고, 그 요동치는 자신과 싸운다. 하지만 그 싸움이 싫지만은 않다. 그는 여전히 연기가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는 순간에서 보람을 느낀다.
"저는 그냥 이 일이 재밌거든요. 좋은 작품이 나왔을 때 뿌듯함도 있고, 그걸 보고 누군가 위안이 되는 것도 좋아요. 그래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니까 어떤 작품을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저를 보면서 계속 이 작업을 해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