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구멍 많은 노역제도④

돈이 없음에도 수백억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만 수억원씩 벌금을 탕감하는 '황제 노역'을 하게 된다. 벌금은 경우에 따라 수천억원까지 선고되나 벌금을 몸으로 때우는 노역기간은 3년이 최대이기 때문이다.
'황제 노역' 문제는 2014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허 전 회장은 500억원대 규모의 세금을 탈루하고 100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횡령해 2011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이 확정됐다.
1심은 허 전 회장의 벌금 미납시 하루 노역을 2억5000만원 상당으로 환산했으나 2심은 벌금을 절반으로 줄이고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환산했다. 50일간 노역을 해서 254억원의 벌금을 내게 된 셈이었다. 당시 국민적 공분이 크게 일었고 검찰은 허 전 회장의 노역형 집행을 멈췄다. 허 전 회장은 이후 224억원의 남은 벌금을 2014년 9월까지 반년 동안 수십억원씩 나눠 완납했다.
해당 사건의 영향으로 하루 노역 환산액이 지나치게 커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1억원 이상 벌금에는 노역장 유치기간의 최저기간 제한이 생겼다. 당시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 300일 이상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 1000일 이상 등으로 형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노역장 최대 유치기간인 3년 상한이 바뀌지 않아 벌금이 수백억원대인 경우 여전히 하루 노동 환산액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됐다. 결국 재산을 은닉한 사람에게는 노역장 유치가 벌금을 줄이는 선택지가 된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는 벌금만 1465억1000만원이다. 라 전 대표의 벌금형이 확정됐음에도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1000일간 노역장에 유치되고 벌금은 하루 1억4651만원씩 감면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534억7615만원이다.

노역장 유치기간을 7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2020년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고액 벌금자의 하루 환산액은 줄일 수 있지만, 벌금형이 장기 구금형처럼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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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역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이 작량감경을 통해 벌금을 자의적으로 환산해 노역에 처하는 것도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가 법정형이 낮지는 않은데, 집행을 잘 못한다. 법 집행부터 잘 해서 벌금을 내도록 하는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검찰에 범죄수익환수팀이 있긴 하지만 외국과 비교할때 전문성·규모가 부족하고 지원도 모자라다"며 "외국처럼 아예 엄격하게 재산을 강제집행하는 능력을 더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