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날아갔던 마블 슈퍼히어로의 거리 귀환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퍼니셔’. 마블 히어로들이 가진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이나 초능력 따위는 없는 고통받는 복수의 화신. 아이언맨이 구원의 서사를, 캡틴 아메리카가 이상주의를, 스파이더맨이 책임감을 상징한다면 ‘퍼니셔’는 상처와 분노, 그리고 악을 응징하는 거리의 자경단이다. 세상이 아닌 자신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어두운 다크 히어로. 디즈니 가 내놓은 존 번설의 ‘퍼니셔: 원 라스트 킬’은 이 위험한 안티히어로를 MCU에 정식 복귀시겠다는 선언같은 작품이다. 50분 분량의 이 짧은 중편은 퍼니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마블의 맛보기라 할 수 있다. '데어데블: 본 어게인' 시즌 1을 통해 마블 팬들과 압도적인 첫 만남을 가졌던 그는 오는 7월 개봉될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데이'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펼칠 예정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는 퇴역 군인 프랭크 캐슬(존 번설)은 거리를 장악한 조직 ‘마 그누치’ 가문을 처절하게 학살한다. 세 아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마 그누치 가(家)의 미망인은 프랭크를 찾아와 피의 복수를 예고한다.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프랭크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을 건 것. 죽은 아내와 아이들의 환영을 보며 죄책감에 허우적대는 프랭크는 삶을 끝내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위험에 빠진 이웃집 싱글맘과 소년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총을 든다.
더 크고 더 강한 것에 집중하던 마블은 우주로까지 확장된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에서 다시 어두운 도시의 거리를 지키는 히어로 라인을 재정비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데어데블’ 시리즈의 호평에 힘입은 ‘킹핀’과 ‘퍼니셔’는 도시의 범죄 세계로 다시 시선을 돌린 마블의 의중을 엿보게 한다.

프랭크 캐슬은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히어로다. 초능력도 없고, 막강한 힘이나 기술도 없다. 오직 군인으로서의 비범한 전투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악인들과 싸우며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는 것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이로 인한 분노, 복수에 대한 의지 때문이다.
이번 작품 역시 프랭크는 여전히 죽은 가족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환영처럼 따라다니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 반복되는 죄책감, 끝나지 않는 전쟁의 기억은 그를 계속해서 과거에 붙들어 놓는다. ‘퍼니셔’ 시리즈를 모르는 시청자일지라도 혼란스러운 그의 심리상태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트라우마를 통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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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퍼니셔’ 그 자체로 평가받으며 역대 가장 완벽한 퍼니셔로 불리는 존 번설의 존재감은 묵직하다. 그동안 퍼니셔를 연기한 많은 선배들의 이미지를 지울 만큼 존 번설은 캐릭터의 폭력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구현하며 ‘상처받은 남자’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분노와 슬픔,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뒤섞인 남자가 고통과 복수심에 괴로워할때 보는 이는 그에게 연민과 동정을 품게 된다.

존 번설의 퍼니셔는 총을 쏘기 전에 고통을 느끼고, 적을 처단한 뒤에도 평화를 얻지 못한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죄책감이 끊임없이 그를 잠식한다. 존 번설이 연기한 퍼니셔는 앞선 시리즈의 캐릭터성을 그대로 이어간다. 액션보다 프랭크 캐슬의 내면을 그리는데 집중하는 한편, 끝나지 않는 전쟁, 사라지지 않는 가족의 기억, 그리고 멈출 수 없는 복수심. 존 번설은 다시 한번 이 복잡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끌어올리며 왜 자신이 최고의 퍼니셔로 평가받는지 힘있게 증명한다.
5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 탓에 이번 작품은 시즌3의 프롤로그의 성격이 짙다. 그동안 시리즈를 아껴준 팬들을 향한 퍼니셔의 서사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를 예고한다. 마 그누치 가문과의 악연과 그들이 떠난 거리의 혼란, 새롭게 등장한 악당을 암시하며 프랭크의 새로운 결심을 담고 있다.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액션 시퀀스와 존 번설의 호연, 철학적이면서 장엄한 분위기로 ‘퍼니셔’의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을 알린다.
정명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