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팝·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채운 8개 트랙
디에잇의 '성장'과 버논의 '도전'으로 완성한 결과물

보이그룹 세븐틴은 이미 K팝 정상에서 성공 공식을 잘 밟아 온 팀이다. 그런 팀의 두 멤버가 검증된 길 대신 발길이 닿지 않은 낯선 지대로 발을 디뎠다. 정답을 따르지 않아 더 인상적인 출발이다.
세븐틴 새 유닛 V8(디에잇, 버논)은 최근 미니 1집 'V8'을 내놨다. 하이퍼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축으로 8개 트랙을 꽉 채운 앨범이다. 타이틀곡은 'singasong'(싱어송). 유닛명은 디에잇의 '8'과 버논의 'V'를 합친 것으로, 두 사람은 이를 8기통 엔진에 빗대며 멈추지 않는 추진력의 이미지를 앞세웠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8기통 엔진의 굉음이 아니라 익숙한 길을 벗어난 두 사람의 거침없는 의지다.
'V8'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모된 청춘'이다. 얼핏 상실이나 낭비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지만 V8은 이를 정반대로 뒤집는다. 방황과 혼란의 시간을 결핍이 아니라 스스로를 점화하는 연료로 재정의한 것이다. 버논은 'V8'을 작업하며 "꿈을 향해 달려가며 거쳐온 과정들, 심지어는 누군가에게 실망했던 일과 같은 사적인 경험도 녹이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는 앨범 전반에 흐르는 정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청춘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불안정함 자체를 동력으로 삼겠다는 태도가 여덟 트랙 곳곳에 스며 있다.
이 테마가 흥미로운 지점은 두 사람이 이미 세븐틴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을 숱하게 노래해 온 아티스트라는 데 있다. 그런 이들이 유닛으로 같은 단어를 다시 꺼냈을 때 그 무게는 완전체 서사와는 다르게 읽힌다. 세븐틴의 청춘이 집단의 성장담이었다면 V8의 청춘은 개인이 감당해 온 소모와 회복의 기록이다.

'V8'이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여진의 면면에서도 드러난다. 전곡의 작사·작곡을 디에잇과 버논이 직접 주도한 가운데, 그래미 14관왕에 빛나는 퍼렐 윌리엄스가 'girlsnboys'(걸스앤보이스) 작업에 힘을 보탰다. 세븐틴 정규 5집에 이은 두 번째 협업이다. 유럽 하우스 신에서 입지를 넓혀 온 메카톡이 타이틀곡을, 한국대중음악상을 두 차례 받은 키라라가 '미아'를 함께 만들었고, 실험적 사운드로 이름난 100 gecs의 딜런 브레이디가 'rat race'(랫 레이스)에 참여했다.
이 조합이 특별한 이유는 하이퍼팝이라는 장르의 위치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화제성은 크지만 정작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여전히 비주류에 가까운 이 장르를 검증된 해외 프로듀서와 인기 아이돌이 작업했다는 점에서 'V8'은 실험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타이틀곡 'singasong'은 하이퍼팝을 기반으로 한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흔들어 깨운다. 노래 제목부터 의도적으로 단순하다. 무언가를 심각하게 설명하거나 의미를 증명하기보다 일단 노래하고 몸을 움직이자고 제안한다. 같은 문장이 계속 반복되면서 언어는 구체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리듬과 질감으로 변한다. 메카톡을 비롯한 앨범 작업 참여자들의 이름을 가사 속 소리 재료로 활용한 방식도 유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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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낡은 차들이 서로 충돌하며 파괴되는 데몰리션 더비를 중심 이미지로 끌어온다. 정해진 트랙도, 정해진 결승선도 없는 이 경기는 목적지보다 충돌 그 자체가 본질이라는 점에서 V8이 말하는 청춘의 은유로 기능한다. 부서질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질주, 그 안에서 발생하는 파편과 충격이 오히려 생동감의 증거로 치환된다.

디에잇과 버논은 이번 앨범을 두고 각각 '성장'과 '도전'이라는 단어를 꼽았다. 디에잇은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송세션을 거치며 스스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됐다"고 했고, 버논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조정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V8'은 완성된 결과물 자체보다 그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 조율과 시행착오를 더 중요하게 여긴 작업이었던 셈이다.
세븐틴은 13명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합과 압도적인 에너지로 성장해 왔다. 그 안에서 디에잇과 버논은 각자의 개성을 팀의 거대한 움직임에 맞춰왔다. V8에서는 반대로 두 사람 사이의 차이와 충돌이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완벽하게 섞이지 않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마찰음이 발생하고, 그 마찰이 이들을 앞으로 움직인다.
이들의 과감한 선택은 기성 K팝 신에 던지는 신선한 충격이자 V8이라는 이름표가 지닌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미 성공적으로 점화된 이들의 엔진이 다음엔 어느 경로로 질주할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