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결혼의 완성'·'아파트'로 맞붙은 40대 '믿보배'들
나란히 연기대상 품은 세 배우, 서로 다른 무기로 안방 장악

대중문화에는 늘 비교가 따라붙는다. 같은 시간대에 공개되는 작품, 비슷한 위치에 놓인 배우와 가수, 한 장르 안에서 보여주는 다른 선택, 한 인물이 만들어낸 색다른 얼굴까지.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VS'를 떠올리며 보고 듣고 말한다. 이 코너는 이런 비교를 출발점 삼아 '차이'가 어떤 재미와 의미를 낳는지를 살핀다. 같은 판에 놓였지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각각의 방식과 매력을 면밀히 짚는다. <편집자 주>
현재 주말 안방극장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치열한 각축전의 최전선에 선 세 명의 장수가 모두 비슷한 궤적을 그려온 동년배 '대상 배우'라는 점이다.
1977년생 동갑내기 소지섭과 지성, 그리고 1978년생 남궁민. 40대 후반(만 나이)에 접어든 이들은 나란히 지상파 연기대상을 거머쥔 이력이 있는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들이다. 중년의 여유와 무르익은 연륜으로 무장한 이 세 남자가 현재 각각 '김부장', '결혼의 완성', '아파트'의 타이틀롤을 맡아 주말 밤 리모컨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세 사람 모두 극 중 '가족'이라는 키워드 아래 절체절명의 위기 혹은 기회(?)를 마주한 가장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하는 방식은 180도 다르다. 묵직한 완력(소지섭), 처절한 절박함(남궁민), 그리고 능청스러운 지략(지성)까지.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주말 안방극장을 점령한 셋의 매력을 살핀다.

'김부장' 소지섭, 리암 니슨도 울고 갈 부성 액션
SBS '김부장'의 소지섭은 말보단 주먹으로 상황을 타개한다. 그가 연기하는 김부장은 평소엔 갈라진 발꿈치와 굽은 어깨로 상사에게 조아리고, 동네 건달에게도 고개를 숙이는 짠내 나는 싱글 대디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 민지(서수민)가 납치되는 순간, 오랫동안 봉인해 뒀던 남북파 일급 공작원 66의 자아가 깨어난다.
소지섭의 무기는 타고난 피지컬과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타격감이다. 할리우드에 '테이큰'의 리암 니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구부정한 어깨를 펴고 안경을 벗어 던진 소지섭이 있다. 그는 요란하게 분노를 토해내거나 감정을 과잉 전시하지 않는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굳게 다문 입술, 군더더기 없이 적의 급소를 노리는 단단한 액션만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끓는 속내를 보여준다.
과거의 소지섭이 고독한 남자의 상처를 주로 연기했다면 40대 후반의 소지섭은 자신의 나이테에 걸맞은 '부성애'라는 갑옷을 입고 한국판 부성 액션의 새 역사를 힘 있게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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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완성' 남궁민, 벼랑 끝 절규의 밀도 100% 감정 스릴러
소지섭이 육체적 사투를 벌인다면 KBS 2TV '결혼의 완성'의 남궁민은 극강의 심리적 사투를 벌인다. 그가 맡은 신경외과 전문의 강태주는 앞선 김부장과는 반대로 남부러울 것 없는 명예와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딸을 잃은 죄책감으로 아내와는 이혼 직전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납치되면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당해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남궁민의 저력은 평범하고 이성적이던 엘리트가 극한의 절망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세밀하게 만들어내는 데 있다. 진실을 부르짖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억울함, 아내를 지켜내야 한다는 핏발 선 집념,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두려움을 흔들리는 동공과 가쁜 호흡 하나에 꾹꾹 눌러 담는다.
KBS 2TV 전작들에서 부조리를 타파하는 통쾌한 영웅('김과장')이나 냉철한 카리스마('닥터 프리즈너')를 보여줬던 그는, 이번엔 모든 것을 잃은 처절한 짐승 같은 절규로 화면을 찢는다. 가장 연약한 위치에 놓였음에도 그의 연기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아파트' 지성, 지략으로 끌고 가는 178억 블랙 코미디 쇼
두 동료가 피를 흘리고 땀을 쥐며 가족을 구하는 사이 JTBC '아파트'의 지성은 178억 원을 훔치기 위해 가짜 가족을 꾸리는 유쾌한 사기극을 벌인다. 지성이 연기하는 박해강은 오아시스파 전직 보스이자 추심의 제왕이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당장 100억이 필요해진 그는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을 꿀꺽하기 위해 동대표 선거에 출마한다.
지성의 가장 큰 무기는 특유의 번뜩이는 눈망울에 장착된 능청스러운 지략이다. 위기 앞에서도 쫄지 않고 주차 빌런의 차를 자신의 차로 사정없이 들이받는 똘기, 선거 출마 요건을 맞추기 위해 단숨에 조폭 부하들과 계약직 아내를 모아 위장 가족을 결성해 내는 추진력은 시청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 출신이 아파트 입주민들의 옹졸한 비리를 엉겁결에 해결하며 '정의의 사도'로 추앙받게 되는 아이러니는 지성의 유연한 코믹 연기를 만나 시너지를 폭발시킨다. 무게감을 한껏 덜어낸 그의 능구렁이 같은 캐릭터 플레이는 숨 막히는 주말극 경쟁에서 또 다른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 대중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으며 정점의 자리를 지켜온 소지섭, 남궁민, 지성. 묵직하게, 처절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안방극장을 장악한 세 명장의 활약 덕분에 올여름 주말 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