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악역이라는 사실이 무색한 소름 끼치는 열연
'김부장' 긴장감 이끄는 최대 빌런

우리가 알던 그 다정하고 젠틀한 미소가 이토록 끔찍한 공포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을까. '김부장'에서 절대 악인으로 변신한 배우 주상욱 이야기다.
온화한 눈빛과 묵직한 목소리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일순간 상상조차 못 한 비릿한 얼굴로 돌변해 안방극장을 서늘하게 집어삼키고 있다. 목소리를 높이며 광기를 과시하는 전형적인 악역이 아니다. 우아해서 더 잔혹한, 주상욱표 절대 악의 신세계가 열렸다.
주상욱은 수많은 작품에서 실장님 캐릭터의 정석을 보여주며 다정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굳힌 데 이어 KBS1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2021)에서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이방원 역을 맡아 극을 장악하는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바 있다. 그렇게 시대를 호령하던 왕의 카리스마는 SBS 금토 드라마 '김부장'에서 데뷔 첫 악역을 만나며 더 폭발적으로 진화했다.

그가 '김부장'에서 연기하는 주강찬은 용역 깡패에서 건설사 회장이 된 인물이다. 과거 이방원이 대의를 위해 피를 묻힌 군주였다면, 주강찬은 오직 자신의 욕망과 통제를 위해 타인의 치아를 모조리 뽑아버리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 폭군이다. 카리스마 넘치되 그 방향을 철저히 왜곡된 권력자의 모습으로 빚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숨 막히는 위압감을 선사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소름 끼치는 빌런이 주상욱의 연기 인생 첫 악역이라는 사실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를 연기하면서도 그는 억지로 목소리를 깔거나 과장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토치로 지져버렸다"라며 자신의 화상 흉터를 담담하게 웃어넘기는 식이다.
감정을 배제한 차분한 무표정과 서늘한 미소만으로 상대를 짓밟는 그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 놀라울 정도다. 악역 연기가 처음이 맞나 싶을 정도로 100% 체화한 살기(殺氣)는 그간 대중이 알던 주상욱의 흔적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이번 역할이 지닌 가장 섬뜩한 매력은 일방적이고도 억압적인 부성애에 있다. 딸 혜리(유지안)를 끔찍이 아끼며 "아빠가 지켜줄게"라고 말하지만, 그 애정은 다정하기보다 딸마저 감정을 숨긴 채 연기하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다. 딸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왜곡된 부성애로 묘하게 마음을 끌더니, 이내 비열한 얼굴로 타인의 생명과 희망을 무참히 빼앗으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기존 신사적인 이미지를 영리하게 비틀어 자신을 향한 대중의 신뢰를 가장 치명적인 배신감으로 뒤바꿔버린 주상욱. 성공적인 첫 악역 변신으로 연기 스펙트럼의 한계를 가볍게 박살 낸 그가 앞으로 김부장(소지섭)과 대립에서 또 어떤 낯설고 비열한 얼굴을 꺼내 들지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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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은 주상욱의 향후 필모그래피에도 중요 분기점이다. 그동안 젠틀한 실장님과 믿음직한 리더, 정통 사극의 주인공으로 각인됐던 그는 이번 작품으로 잔혹한 빌런과 안티히어로, 누아르 장르까지 소화할 가능성을 증명했다. 데뷔 첫 악역으로 기존 이미지를 완벽하게 뒤집는 데 성공한 만큼 앞으로 또 어떤 장르와 캐릭터로 연기 영역을 넓혀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