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역사, 우리가 쓴다]⑧현대건설
아시아 남서부와 아프리카 북동부지역인 중동(中東). 석유를 무기로 별다른 기술없이도 막대한 부를 거머쥐며 이젠 전 세계 자본시장을 뒤흔드는 지역이 이슬람권, 아랍권으로 대변되는 중동이다.
우리 건설기업들도 이곳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지만, 절대 무혈 입성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75년 가을, 사우디 왕국은 야심에 찬 건설계획을 짰다.
주베일 산업항 건설. 사우디 왕국의 국가개발 의욕이 결집된 금세기 최대의 건설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사업은 페르시아만 주베일 지역 모랫벌에 대규모 산업항을 만들어 석유달러로 축적한 부를 조국 근대화에 퍼부어 세계를 놀라게 한다는 게 이 나라의 야망이었다.
실제 이 프로젝트는 몇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일감으로 불렸다. 공사 금액만도 9억3114만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초대형 공사였다. 당시 환율로 이 금액은 4600억 원으로,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그때까지 중동 건설시장은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다. 당시 대한민국 건설기업인 현대건설이 입찰에 참여하기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입찰에 초청받은 기업은 미국, 영국, 서독, 네덜란드, 프랑스 국적의 9개사. 나머지 한 자리에 "어느 기업이 들어오냐"는 것은 이들 기업에겐 안중에도 없는 얘기거리였다. 소위 '잘나간다'는 일본 건설사도 끼지 못했다.
그 자리를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준비기간은 불과 7개월이었지만, 현대건설은 수년간 작업을 해온 선진기업들을 제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당시 사우디 왕족들 사이에서조차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면 내 오른팔을 잘라라"고 호언할 정도로 현대건설의 수주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6년 2월16일, 현대건설은 세계 건설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아직도 믿기 어려운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낸 것이다. 그 무렵 국내 외환사정은 최악이었다. 때문에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는 국가적인 관심사이기도 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기성금까지 챙겼다. 이때 들어온 공사금액은 국내 달러화 외채까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노가다'라고 손가락질받던 건설업자가 외채 부도를 해결하는 구국의 장을 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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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건설업체들이 제집 안방드나들 듯 하는 중동 건설시장의 문은 이렇게 열렸다.

◆대한민국 해외건설을 이끌다
560억9284만 달러.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수주 실적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1966년 이후 현대건설이 세계 47개국에서 벌어들인 외화 규모다. 국내 전체 건설기업이 해외 건설현장에서 수주한 2439억3358만 달러의 2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현대건설을 '해외건설의 대명사'로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은 수주고 가운데 중동에서 거둔 금액은 모두 334억5768만 달러. 자체 해외수주액의 60%에 달한다.
이쯤되면 현대건설이 왜 또다시 찾아온 중동 특수 공략의 선봉장인지 알 만하다. 그만큼 역사, 명성, 평판, 경력 등 모든 면에서 현대건설은 대한민국 대표이기에 충분하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위기는 불과 6년여 전인 지난 2001년에 찾아왔다. 자금난으로 인해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현대건설은 수익성에 치중, 전체적인 볼륨을 줄였다.
그해 7억3939만 달러에 그친 현대건설의 해외 수주는 2002년(15억3804만 달러)을 제외하곤 2004년까지 연간 10억 달러를 넘지 못했다.
한때 국내 업계 수위 자리를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25억2542만 달러로 재시동을 건 현대건설은 2006년 26억9325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올 들어서도 11월20일 현재 36억6387만 달러로 이미 목표치를 채웠다.
의미를 더하는 것은 수익률이다. 과거 외화 획득이란 명분으로 볼모지에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주했던 일은 기억에서조차 없다. 외국 발주처가 수십억 달러짜리 공사를 준다고 해도 결코 남지 않는 프로젝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명분뿐 아니라 실리와 자존심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 플랜트 시공역사를 쓰다
지난해 4월, 현대건설은 또한번 해외에서 일을 냈다. 16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플랜트 공사인 이란 남부 아쌀루에(Assaluyeh) 소재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4,5단계 공사를 세계 대형플랜트 시설공사 사상 최단기간인 35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완공한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세일즈 가스는 이란 경제특구인 아쌀루에 산업단지와 이란의 각 가정에 하루 18억 입방피트(5096만㎥) 규모로 공급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 현장에서 현대건설이 남긴 기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사 부분에 있어 2005년 3월20일 세계 대형 플랜트 시공 사상 최단 기간인 착공 24개월 만에 Fuel Gas-In(원료가스 도입)을 완료한 데 이어 착공 28개월 만인 같은 해 8월16일 최단 기간 제품생산에 성공했다.
인력 부분에 있어서도 일일 동원 인력이 1만8300명에 달했고 연인원은 모두 950만명을 투입, 역시 이 부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시 이란 정부의 하타미 대통령이 "사우스파 전체가 완공될 때까지 현대건설은 절대 이란을 떠나서는 안된다. 이 곳에 남아 나머지 공사도 모두 수행해 달라"며 눈시울을 붉힌 사실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신화
현대건설인들은 "해외 건설시장에서 걸어온 길은 미개척지를 처음 발굴한 콜럼부스의 심정과 같다"고 회고한다. 이런 표현대로 현대건설의 발길이 닿은 대다수 해외 현장이 개척당시 우리기업엔 모두 불모지나 다름없던 곳들이다.
그렇다고 뚝심으로만 이런 세계 건설역사를 써온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안에는 현대건설 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전세계가 인정하는 기술이 바탕이 됐다.
최근 사업장 중에는 지난해 8월 수주한 카타르 Pearl GTL(천연가스를 석유제품으로 전환하는 것) 공사가 대표적이다. 직전까지 만해도 GTL은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 일부기업만이 독점해 왔던 분야로, 국내 건설업체로는 첫 수주의 개가를 올렸다.
초대형 발전소 공사들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쿠웨이트 수전력성이 발주한 '슈아이바 노스발전 및 담수 플랜트공사'를 7억1300만 달러에 따냈고 9월에는 리비아 전력청으로부터 13억6000만 달러 규모의 트리폴리 서부발전소 및 알칼리지 발전소 공사를 확보했다.
발전부문이나 전기 분야는 플랜트시장에서도 세계 톱클래스 기업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공사다. 그만큼 현대건설은 또다른 시장 개척을 향해 닻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