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후보 부지로 경북 영덕군(대형 원전)과 부산 기장군(소형모듈원전·SMR)을 확정하면서 건설업계의 발걸음이 한층 분주해졌다. 장기간 이어진 국내 원전 발주 공백이 해소되고 SMR이라는 신규 시장이 열린다는 점에서 수주 기대감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건설업계는 이번 부지 선정을 사실상 중단 상태였던 국내 원전 시장이 재가동되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원전 사업은 단일 프로젝트 규모가 크고 공사 기간이 장기화되는 특성상 수주잔고와 중장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업계는 이번 부지 선정이 2030년대까지 이어질 중장기 수주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원전 부지 선정은 대형 원전과 SMR 건설이 동시에 추진된다는 점에서 대형 건설사뿐 아니라 중견 건설사의 참여 가능성도 점쳐진다. 기존 대형 원전 시공 경험을 보유한 상위 건설사뿐 아니라 중견 건설사와 엔지니어링 기업들도 컨소시엄 형태를 통해 일부 공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수주 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 기존 원전 시공 경험을 보유한 대형 건설사들이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원전은 건설사 입장에서 수행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공사 중 하나로 초정밀 기술과 안전 관리 역량이 동시에 요구된다"며 "국내에서 주관 시공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사업 방식상 중견사에게도 참여 기회는 열려 있다. 원전 프로젝트는 주관사와 부주관사, 협력사로 구성되는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중견 건설사들은 보조 설비, 특화 공정, 설계 지원 등 제한적인 역할을 통해 시장 진입을 모색하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화력 발전 플랜트 경험을 보유한 기업들은 기존 역량을 기반으로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가장 큰 관심은 SMR 부문에 집중된다. 국내 첫 SMR 부지라는 상징성과 함께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SMR은 주요 설비를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기존 대형 원전 대비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 증가와 맞물리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분야다.
글로벌 SMR 시장이 초기 경쟁 단계에 있는 만큼 국내 SMR 프로젝트 경험이 향후 해외 진출을 위한 레퍼런스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한국형 SMR 시공경험이 향후 글로벌 시장 선점 여부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SMR 부지 선정은 국내 SMR 산업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의 공급망 경쟁력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자들의 PICK!
다만 SMR 시장은 아직 기술 표준과 사업 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국내 건설사들이 각각 다른 해외 기술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표준 노형 채택 방향에 따라 경쟁 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채택 여부에 따라 기업별 수혜가 엇갈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업 추진 일정 역시 주요 변수다. 원전 건설은 전원개발구역 지정, 환경영향평가, 건설 허가, 주민 수용성 확보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실제 착공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부지 확정 이후 후속 절차의 속도가 전체 사업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SMR 부지 선정은 국내 원전 산업 재개와 함께 신시장 진입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도 "향후 인허가 진행 속도와 기술 표준 결정 과정이 사업의 방향성과 수주 경쟁 구도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