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근퇴법' 개정안 처리 서둘러야

[기고] '근퇴법' 개정안 처리 서둘러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9.07.01 09:31

수십년간 퇴직금은 서민 근로자의 노후 생활자금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그러나 퇴직연금에 보다 많은 기대가 실리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 경제 및 고용사정의 변동성 확대 등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하며 퇴직금의 한계가 나타난 때문이다.

근로자의 잦은 이직,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재정악화, 그로 인한 노후생활의 불확실성 증가도 퇴직연금 활성화 논의에 속도를 붙였다. 근로자들의 은퇴 후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의 도입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긴박한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선진국에서는 근로자들의 노후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퇴직연금제도가 이미 보편화됐다. 또한 이를 공적연금제도와 결합해 더욱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제도를 구축하는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한 보완책을 속속 마련, 한층 더 안정적인 퇴직연금제도 운용체계를 강구하고 있다.

우리도 2005년 12월 제정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통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으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4년여 시간이 지난 현재 퇴직연금 가입률이 10% 미만에 불과하다. 당초 기대한 30~40%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재정기반이 약한 중소기업일수록 진척이 더디다.

이 와중에 발생한 세계 경제위기는 퇴직연금제도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이 파산하거나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그 결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채 실업자가 된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파산신청기업(특히 중소기업)은 전년 대비 150% 증가했고 퇴직금 총체불액은 2835억원가량으로 집계됐다. 퇴직금 체불 근로자수는 28만여명에 달한다. 중대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안정적 수급권을 보장하는 퇴직연금제도 확대를 더이상 지체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초기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전문가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를 종합한 것이었다.

개정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중소기업을 위한 비용절감형 퇴직연금모델인 연합형 또는 표준형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또한 퇴직급여가 단기 수요로 인해 소진되지 않고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수단이 될 수 있도록 중간정산사유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해서는 가입자에 대한 기업 및 퇴직연금사업자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문제는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 처리가 미뤄지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기업의 재정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중간정산제를 실시한 기업이 전년보다 93%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법 개정의 취지가 반감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개정안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도 시행의 초기단계임을 고려하면 분명히 진일보한 퇴직연금법 정책을 지향하고 있으며 장기 관점에서 제도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노동법령은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특성 탓에 논란이 많은 게 사실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뿐 아니라 현실적인 타탕성도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하루라도 빠를수록 많은 근로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민생법안"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정치권에 다양한 이슈가 산적한 건 사실이나 이 또한 미룰 수 없는 현안 중 하나다. 입법현장에서 정치적 입법과 민생입법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발휘되기를 당부하며 비전과 품격을 갖춘 의원들의 역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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