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회장이 밝힌 '5가지 오해'

강만수 회장이 밝힌 '5가지 오해'

박종진 기자
2011.03.22 16:27

'민간' 둥지 튼 강만수 회장, 첫 기자상견례…"나 이런 사람이야"

강만수 '장관'이 아닌 '회장'은 사뭇 달랐다. 어느 때보다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스스로를 "인생을 감성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산은금융그룹 회장이자 산업은행장으로서 첫 '민간 수장'을 맡아 언론과 이렇게 상견례 했다.

22일 오찬 간담회는 지난 1999년 시조문학 겨울호에 실린 강 회장의 시조 '그리움'을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인생은 그리움이라"고 표현한 그가 민간에서 펼칠 꿈과 그리움의 실체는 시처럼 은유적으로 완곡히 표현됐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이런저런 일화로 풀어나갔다. '금융인 강만수'로 시장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다.

◇칼 같이 냉정한 사람?=강 회장은 이날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추측성 언론보도로 상처받은 얘기를 여러 번 꺼냈다. "가정사의 어려움이 풍문과 연결돼 언론에 등장할 때 나와 가족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장관시절 말 한마디가 의도와 달리 전해져 난감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소위 '정권의 실세'라는 고압적 이미지가 아닌 감성을 지닌 '자연인 강만수'의 모습을 전했다.

◇강고집? 강 히어링!=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고집 세다'는 편견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지난 2005년 후배 국회의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을 맡게 될 때를 회고하며 "앞으로는 남 생각대로 살아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솔로몬의 지혜를 '히어링(듣기)의 지혜'라는 그는 "나와 직접 일해 본 사람들은 내가 고집 세다는 얘기 안 한다"고 자신했다.

당면 현안인 수신기반 확충을 위한 소매금융 확대도 "보고는 받았지만 4월 중순쯤 확대간부회의, 워크숍을 하며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문제도 "공부 중"이라며 "반대 의견 듣지 않고 의사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글로벌 시장 지향의 원칙은 분명히 밝혔다. 그는 "우리가 해외 지향적일 때 번성했고 대내 지향적일 때는 어려웠다"며 "모든 것을 글로벌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큰 형님' 왔다?=강 회장은 행시 기수(8회)가 금융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23회)보다 15기나 빠르다. 그가 국장시절 사무관이 김 위원장이었다. 4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도 사실 '급'이 다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강 회장은 '오랜 동지'사이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날 "당국이 결정해야 할 사항은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자칫 까마득한 선배가 와서 후배 하는 일에 미리 말뚝 박는다고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나는 이미 정부 떠나온 사람"이라며 "감독(정부)이 해야 할 일과 배우(민간)가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 한국은행 주최의 은행장 모임 등에 안 나간 것도 당시는 이날 열린 주주총회 이전이라 정식 은행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한금융 가려 했었다?=자신이 환율주권론자로 알려진데 대해서도 "펀드멘털을 반영하는 환율 시장 시스템을 강조했을 뿐"이라며 "G20(주요 20개국) 회담 때도 문제가 드러났듯이 환율을 더 이상 시장에 맡기는 것이 어렵다는 정도의 취지"라고 밝혔다.

애초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려고 했다는 설도 해명했다. "장관을 그만 둔 후 친구가 사업을 하자고 해서 민간으로 간다는 소문, 이재과장 시절 라응찬 전 회장(당시 상무)과 인연, 개인적 어려움 등 독립적인 사안들이 합쳐져 떠돈 얘기"라고 밝혔다.

그는 산업은행과 각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주미대사 재무관 시절 같은 사무실을 썼던 기억부터 재무부 이재국장 당시 산은법 개편 주도, 차관 때 긴박했던 해외 차입 노력 등을 거론했다.

강 회장에게 산은은 어느새 '우리' 은행이었다. 그는 "주총이 끝나 정식 은행장도 됐으니 이제 우리 은행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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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재계를 맡고 있습니다. 개인이 잘되고 기업이 잘되고 그래서 나라가 부강해지는 내일을 위해 밀알이 되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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