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5대 천왕' 부른 SD

금융권 '5대 천왕' 부른 SD

박재범 기자
2011.04.18 15:10

5대 금융사 회장에 "건설사PF 문제에 금융권이 고민해야" 압박 아닌 압박

금융권에 '4대 천왕'이라는 말이 있었다. 4명의 왕은 황영기 KB금융, 라응찬 신한금융, 이팔성 우리금융, 김승유 하나금융 지주 회장을 칭했다. 현 정부 출범 후 금융지주사 회장에 자리 잡은 '실세'를 비꼬아 부른 말이기도 했다. 실제 황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 회장과 김 회장도 이 대통령과 연이 깊다.

'4대 천왕'의 등장은 감독당국을 곤혹스럽게 했다. 지주 자회사인 은행에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은행장을 불러 모아 호통을 쳐도 그 자리로 끝이었다. 그마저도 과거 담당국장이 봤던 은행장을 금융위원장이 만나는 상황이 됐다. 부행장이 대참하는 사례도 적잖았다.

금융당국 수장이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간담회를 가진 사례도 없다. 지난해 5월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금융인 오찬 간담회가 전부였다. 금융지주사의 위상은 그만큼 커졌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뭐하냐고 했지만 실제 4대 천왕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몇몇의 얼굴이 바뀌었지만 그 위상은 그대로다. 황 전 회장의 자리엔 실세 어윤대 회장이 앉았다. 산은지주는 현 정권의 창업공신인 강만수 회장을 모셨다. '4대 천왕'이 '5대 천왕'이 된 게 차이라면 차이다.

이런 이들이 한 자리에 '소집'됐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불러 모았다. 취임 일성으로 '존재감'을 얘기했던 그다. 행시 선배(강 회장), 고등학교 선배(어 회장, 김 회장)에다 '정권 실세'란 타이틀은 일단 뒤로 밀렸다. 정부 관계자는 "장관(위원장)이 대통령의 뜻을 받아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실세라고 해도 (김 위원장에) 앞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강한 어투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장황하지 않고 간결했다. 메시지는 크게 세 개였지만 무게는 건설사 지원에 찍혔다. 모두 발언부터 건설사를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금융권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짧은 언급으로 분위기를 다잡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뿐 아니라 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 금융권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가계 부채 건전성, 카드사 과당 경쟁 문제도 거론했다. 금융권은 당장 '압박'으로 해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2003년 카드대란 해결을 위해 은행장을 불러 모았던 때를 기억하게 한다"고 회고했다.

2003년 4월 3일에 있었던 사건을 얘기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은행장이 회의를 하고 있던 자리에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국장이 각 은행장에게 노란색 봉투를 하나씩 돌렸다. 그 봉투 안에는 카드부실 해결을 위한 브리지론 가운데 은행이 부담해야할 3조8000억원의 은행별 할당액이 적혀 있었다. 항의하는 일부 은행장들에게 김 국장은 "당신 때문에 나라 망하면 책임 질 거냐"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회사까지 넘어가도록 하는 것은 금융회사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압박이 아니라 금융산업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금융산업은 결국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소집'을 당한 이들의 표정은 마뜩치 않았다. 간담회 시작 전 여유를 보였던 '5대 천왕'의 얼굴은 1시간30분 뒤 달라졌다. 웃음기도 사라졌다. 일부 인사는 "담보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지원만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건전성 잣대와 다른 기준을 들이대는 당국을 향한 볼멘소리다.

그렇다고 금융당국과 각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건설사 부실 책임을 떠안는 것도 어렵지만 부도 책임을 받아 안는 것도 부담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친 상황에서 발을 빼기도 모양새가 우습다.

또 이번 모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김 위원장은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모아 현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저축은행 인수 문제로 금융지주사를 다룬 바 있는 김 위원장이 금융권의 '컨트롤 타워'로 5대 천왕을 활용하겠다는 얘기인데 5대 천왕 길들이기에 성공할 지 관심이 쏠린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박재범 편집국장

박재범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