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짝꿍-100년 은행 100년 기업의 따뜻한 동행] <4> 우리은행-하]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엔 '표지석'이 하나 있다. 1945년 10월 이 자리에서 창업한 노루페인트(옛 대한오브세트잉크)가 우리은행의 배려로 설치한 지석이다. 지석에는 '노루페인트 창업터'란 글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지난 해 12월 표지석 설치와 제막식 기념행사엔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과 안경수 노루페인트 회장 등 그룹 최고 경영진들이 모두 참석했다. 당시 수석 부행장이던 이순우 우리은행장과 행장이던 이종휘 신용회복위원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기념행사에 앞서 한 회장은 우리은행과 동행한 66년 역사를 회상하고 감사패를 전달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노루그룹은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은행과 동반성장한 기업"이라며 "은행은 인수합병 등의 과정에서 변화를 많이 겪었지만 노루페인트는 66년 간 단 한 번도 기업 고객 리스트에서 빠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회현동에 본사를 두게 된 것도 노루그룹과의 깊은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노루페인트(옛 대한잉크)는 광복과 함께 설립돼 올해로 창립 66주년을 맞은 국내 페인트 업계의 산증인이다. 창업 당시 고(故) 한정대 노루페인트 회장은 공장 부지를 회현동에 마련했다. 사업자금이 필요했던 고 한 회장이 찾아간 곳은 조선은행이었다.
조선은행은 당시 중앙은행 역할을 했지만 시중은행 창구업무(일반업무)도 같이 수행했다. 고 한 회장은 "조국을 부강하게 하는 사업을 일으키려 하는 만큼 조선은행이 융자해 달라"고 요청해 담보도 없는 상태에서 순수 신용으로 5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1950년 조선은행을 대체할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이 설립되자 창구 업무가 한국상공은행으로 넘어갔다. 자연스럽게 노루페인트 거래도 한국상공은행이 맡게 됐다. 우리은행과 노루페인트의 '상생협력' 관계가 본격화 된 것도 이 때부터다. 한국상공은행은 한국흥업은행을 거쳐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으로 바뀐다.
6·25 전쟁 당시 노루페인트는 군용 트럭을 이용해 피난지인 부산으로 기계와 원료를 실어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고 한 회장은 한국상공은행 소공동 지점의 도움으로 피난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부산에 임시로 인쇄 공장을 세워 은행권을 인쇄할 때 노루페인트가 인쇄 잉크 공급을 담당했다"며 "전란의 와중에 회사 재건의 기회를 준 것이 바로 우리은행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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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노루페인트는 국내 페인트 브랜드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회사를 키웠다. 한국 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모든 제조업과 연관된 페인트와 잉크산업도 함께 커 나갔다. 2006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노루그룹은 현재 주력 계열사인 노루페인트를 포함해 국내 계열사 8개, 해외투자 합작사 6개, 국내 합작사 3개 등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그룹 전체 매출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우리은행(당시 한일은행)은 지난 1995년 신용거래 50주년을 기념해 "50년 신용 거래 지속이라는 전통은 '신용과 성실'을 기업의 생명으로 여기는 노루페인트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고 한국 경제의 신용 질서에 본보기가 됐다"며 회사측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은행과 노루페인트의 관계는 재계와 금융권에 화제가 됐다. 우리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50만원으로 시작해 50년간 한 우물을 판 기업과 은행이 50년 동안 '상생'해 온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한 일간지는 "우리은행과 노루페인트의 긴 신용 거래는 우리나라 기업사와 금융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썼다.
우리은행과 노루페인트의 '끈끈한 관계'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양사는 최근 색다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 을지로의 노루페인트 제2창업터와 바로 옆에 인접해 있는 우리은행 을지로지점 부지를 공동 개발하는 사업이다. 노루페인트 창업터인 짜투리땅과 우리은행 부지를 합해 랜드마크 빌딩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창업터에 애착이 큰 노루페인트나 우리은행으로선 일종의 '상생 프로젝트'인 셈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공동 개발 후 신축한 빌딩을 은행과 기업이 함께 사용하고 이익도 공동 향유할 계획"이라며 "은행과 기업이 이런 관계를 맺기 쉽지 않은데 60년 이상의 인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루그룹 담당 RM지점장을 맡고 있는 김용승 경수기업영업본부 RM지점장은 "기업과 거래하다 보면 크고 작은 마찰이나 갈등이 있게 마련이지만 노루와의 거래는 항상 원만하다"며 "눈빛만 봐도 아는 친구같은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노루그룹이 우리은행의 중견기업 '짝꿍'이라면 (주)상보기업은 대표적인 중소기업 '동반자'다. 측정기기 등 기계공구 유통 전문업체인 상보기업은 지난 5월 '2011 전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중소기업의 육성과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우량 기업이다. 1987년 설립 당시부터 우리은행과 25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5년 전 본사를 서울 구로로 옮겼지만 지금도 우리은행 을지로지점과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오육환 상보기업 사장은 "우리은행과 거래하는 우량 중소기업 모임인 우리비즈니스클럽 멤버로 참여해 여러 최고 경영자(CEO)들과 교류하고 경영 정보도 얻고 있다"며 "우리은행과는 막역한 친구 같은 사이"라고 말했다.
40여 년간 피부연구로 한 우물을 파 기초화장품 분야의 대표 기업으로 통하는 (주)참존도 우리은행의 '26년 지기'다. 참존은 1986년 한일은행 도산로지점과 같은 건물에 입주한 게 계기가 돼 지금까지 우리은행과 끈끈한 거래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광석 참존 회장은 "사업도 마찬가지지만 기업이 은행과 거래하려면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 "어려울 때 보여준 우리은행의 든든한 믿음이 다른 은행들의 숱한 제의에도 거래를 유지해 올 수 있던 힘이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