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년 '기업금융' 외길, 우리銀-기업 '상생론'

112년 '기업금융' 외길, 우리銀-기업 '상생론'

오상헌 기자
2011.10.06 05:00

[세기의 짝꿍-100년 은행 100년 기업의 따뜻한 동행]<3>우리은행-상

[편집자주] [편집자주]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주도해 온 기업의 뒤엔 은행이 있다. 기업가 정신과 은행의 실물지원이 결합한 성취가 '경제발전'이었다. 은행과 기업은 동반자다. 상생 협력과 공생의 모델이다. 실제 기업과 은행의 끈끈한 신뢰를 보여주는 사례는 적잖다. 수십 년 씩 장기간 거래를 지속해 온 기업과 은행의 관계는 '이해타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과 의리가 묻어 있다. 금융과 실물의 '아름다운 동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은행과 기업의 동반자 관계를 조명하고 역사와 현재, 미래를 전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지방 지점과 소기업의 만남부터 은행과 대기업의 거래, 금융과 실물의 소통까지 아우를 예정이다.

'기업금융의 최강자'. 우리은행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은행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기업'이다. 국내 은행 중 가장 많은 거래기업과 기업금융 전문가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40%가 우리은행 거래고객이다. 가계 등 리테일(소매금융) 비중이 절반 안팎인 경쟁 은행들과 고객 분포도가 확연히 다르다. 전제 대출 자산의 60% 이상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등 기업대출이다. 가계대출 비중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주저없이 '기업금융'을 최대 강점으로 꼽는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우리은행은 경쟁은행을 압도하는 글로벌 대기업 네트워크와 기업금융 노하우, 우수한 인력풀을 갖추고 있다"며 "메이저 토종은행으로서 제대로 된 기업금융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이 행장은 취임한 지 반 년이 넘은 요즘도 발품을 팔아 대기업은 물론 지방 중소기업을 쉬지 않고 찾아다닌다. 기업고객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민족상인' 위한 민족은행, 112년전부터 '기업금융'= 우리은행이 기업금융에 특화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12년 전인 1899년. 당시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금융자주화 시책을 추진했다. 일제의 침탈에 맞서려는 움직임이었다.

민족 상인들로부터 돈을 걷어 대한천일은행을 설립했다. 고종 황제도 직접 황실 자금인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한천일은행이 바로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이다. '민족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이었다.

은행 창립이념은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 돈을 원활하게 돌게 하는 것이 국가발전의 근본이라는 의미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금으로 치면 국내 토종기업인 민족상인들에게 자금을 원활히 공급하는 것이 대한천일은행의 설립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상업은행과 함께 우리은행의 또 다른 줄기인 한일은행의 전신(조선신탁주식회사와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도 기업금융 주로 하는 금융회사였다. 조선신탁은 1932년 설립돼 부동산과 유가증권, 금전 신탁자금 운영을 전문으로 담당했다. 1936년 설립된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는 서민 금융이나 소기업 금융에 특화됐다. 두 회사는 광복 후 '한국흥업은행'으로 합쳐졌다 1960년 한일은행으로 바뀌었다.

◇은행·기업 '동반성장' 하니 한국경제도 '쑥쑥'=1960년대 이후 우리은행은 한국 경제의 고성장 과정에서 기업들과 '고락'을 항상 같이 하며 '상생', '공생'했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한국 대표 기업들과도 본격적으로 연을 맺었다. 삼성과 LG, 포스코 등이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대기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은 "1970년대 경제개발 시기엔 국가의 전략적인 산업 정책 방향에 따라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자금 배분을 담당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며 "삼성과 LG, 포스코 등 주요기업의 주거래은행으로 국가 경제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시련을 맞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보철강과 진로그룹 등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기업 줄도산으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부실채권도 급격히 늘었다. 경영 위기였다. 기업 부도가 은행 퇴출로 이어지는 악순환 과정에서 결국 상업·한일은행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돼 한빛은행으로 합쳐졌다. 이렇게 탄생한 게 바로 지금의 우리은행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기업들과 거래실적이 많은 우리은행에 타격을 줬다. 건설업과 조선업계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부실채권이 늘어났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기업금융의 특성상 은행의 경영환경도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거래 기업들과 흥망, 성쇠를 같이 하는 게 기업금융에 강한 우리은행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구조조정의 달인, 살려는 환자 의사가 살린다= 우리은행은 올해 기준으로 37개 주채무계열 대기업집단 중 15곳의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다. 삼성 LG 포스코 두산 한화 LS 효성 대림산업 CJ 성동조선해양 코오롱 한국타이어 하이트홀딩스 한솔제지 SPP조선 등이 모두 우리은행 주거래기업이다. 경쟁 은행에 비해 압도적인 거래 숫자다. 중기업이나 중소기업 쪽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우리은행은 부실이 심하거나 조짐이 있는 기업 구조조정에 거의 항상 주요 역할을 담당한다. 금융당국이나 경쟁 은행에서조차 "우리은행이 없다면 기업 구조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 우리은행의 도움으로 정상화를 추진 중인 기업은 부지기수다. 당장 올해만 해도 중견 건설사인 진흥기업과 삼부토건, 삼안 등이 우리은행 주도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진흥기업의 경우 우리은행이 자금지원에 난색을 표했던 대주주를 설득해 정상적인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다. 삼부토건 사례도 비슷하다. 서울 헌인마을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발목 잡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삼부토건을 설득, 현재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직접 삼부토건 회장을 만나 회생 의지를 확인한 이 행장이 "의사(은행)는 환자(기업)를 살려야 한다"며 다른 채권은행들을 직접 설득한 건 유명한 일화다.

우리은행 여신사업부 관계자는 "은행 내 기업 구조조정 담당 업무가 많다 보니 해당 부서에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담당해 온 베테랑 인력들이 배치돼 있다"며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와 경험들이 효과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 충성도도 '으뜸', 주주 자처 거래기업=우리은행이 수십 년간 끈끈한 정과 의리로 맺은 기업들과의 인연이 실제 '상생' 사례로 나타난 사례도 적잖다. 고객들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 해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거래기업들의 우리은행 사랑이다.

우리은행 거래고객과 기업들은 우리금융 매각 입찰에 직접 참여해 우리금융 자체 민영화를 추진했다. 우리은행 기업고객들의 모임인 우리비즈니스클럽, 우리다이아몬드클럽 소속 기업은 물론 개인 고객들까지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탰다. 포스코 등 대기업들도 돈을 대 주주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은행 한 부행장은 "우리은행과 수십 년씩 거래해 온 고객들은 우리금융이 다른 금융회사와 합병하거나 피인수되는 데 반대해 직접 과점주주로 나서기로 했던 것"이라며 "당시 거래기업들과 고객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뜨거워 놀랐다"고 말했다.

거래 기업 대표들은 우리은행 명칭을 둘러싸고 타은행과 갈등을 빚던 2007년 "독도가 다케시마가 될 수 없듯 '우리은행'은 결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며 우리은행 노사와 함께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포스코와 우리은행의 '끈끈한 인연'도 재계와 금융권에서 유명하다. 포스코는 외환위기 당시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이 어려움에 처하자 무배당 증자 결정으로 지원했다. 2006년엔 우리은행이 적대적 인수합병(M & A) 위협에 처한 포스코의 '백기사' 역할을 했을 만큼 양사는 특수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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