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을 중시하는 시스템에서 소비자의 편의를 강조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정부 관계자가 '전자상거래 결제 간편화 방안'과 관련해 지난 28일 언급한 내용이다. 정부는 대통령의 이른바 '천송이 코트' 발언 후 국내에서도 '페이팔'과 같은 간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정책의 변화를 예고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국내 결제시장을 취재하며 보고 들었던 내용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통상 점진적으로 바뀌는 정부 정책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결정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국내 결제시장에서 '제1원칙'은 보안이었다. 숱한 금융사고의 여파다. 올해 1월 발생한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이후 카드정보는 민감하게 활용돼야 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보안에 취약한 신용카드 결제단말기를 전면 IC단말기로 교체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 후 잇따라 쏟아진 정부의 정책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각종 장치를 마련했다. 여러 대책의 일관된 내용은 "국내 결제시장의 보안 강화"로 요약된다. 그만큼 국내 결제시장이 보안에 취약했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불과 몇 달만에 정부는 결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언'했다. 보안보다 편의성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도 유효기간과 CVC번호 등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국내 결제시장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을 환영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오히려 우려의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장 실효성에서 의문이다. PG사는 카드사와의 계약을 통해 카드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행법상 PG사에서 정보유출 등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카드사의 몫이다.
물론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PG사가 책임을 지겠다는 문구를 삽입할 수 있지만, 이를 수용할 곳은 많지 않다. PG사의 보안능력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카드 정보를 저장한 PG사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를 떠나 또 다시 비판적인 여론이 비등해질 것은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융당국이 기존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뒤엎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만큼 정부의 이번 대책은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카드업계의 목소리가 볼멘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