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일 열린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기자간담회 공지는 다소 이례적이었다. 관례를 깨고 불과 행사 며칠 전에 공지가 됐기 때문이다.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인사자리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거나. 결론은 후자였다. 김 회장은 그날 은행 조기통합을 공론화하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 논의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조기통합 논의는 숨가쁘게 진행됐다. 7월11일 하나금융 전체 임원이 조기통합 추진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같은달 17일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조기통합 추진을 의결했다. 하나은행장과 외환은행장은 지난 19일 통합을 '선언'하며 조기통합 추진에 방점을 찍었다. 오는 28일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이사회가 조기통합을 의결할 예정이다.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일정이지만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남은 절차가 있다. 은행 조기통합에 반대하고 있는 외환은행 노조가 통합에 동의하는 일이다. 외환은행 노조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노조의 주장대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은 2012년 2월 작성된 '2.17 합의서' 정신에 어긋난다. 당시 합의서에는 향후 2017년까지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명분 싸움에서는 외환은행 노조가 앞선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도 맞다. 하나금융에서 외환은행 노조와 사전 협의 없이 조기통합을 언급한 것 역시 노조를 자극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2017년에 통합하는 것과 그 전에 통합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노조의 주장대로 2017년 이후에 통합을 논의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금융권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지금, 실리를 한번쯤 고민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외환은행 경영진은 이미 외환은행 노조에 몇 가지 실리를 제시했다. 통합이 되더라도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근로조건을 유지하겠다는 조건이다. '2.17 합의서'에는 통합 후 근로조건에 대한 보장내용이 없다. 외환은행 직원 입장에서는 통합 후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잠재울 수 있다. 노조의 역할에 따라 추가적인 '당근' 역시 제시받을 수 있다. 명분을 가진 외환은행 노조는 협상테이블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외환은행 노조가 '명분 투쟁'이 아닌 '실리 협상'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