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요?” “그렇다니까. 우리 회사 부근에 새로 생긴 OO병원 있잖아? 실손보험만 있으면 20만원짜리 도수치료가 1만원이면 돼. 실손보험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 “근데 몸에 별 이상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웬만하면 허리에 협착 증세라도 있어. 병원만 가면 다 알아서 해줘.”
지난해 한 선배의 소개로 실손보험을 활용하는 새로운 세계에 눈 떴다. 오른쪽 어깨도 가끔 아프고 목도 뻣뻣하던 차에 도수치료를 받고 실손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니 정보를 얻은 것이다. 바로 다음날 병원으로 달려가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와 상담했다. 선배 말대로 의사는 허리 척추관이 미미하게 좁아져 있고 목이 다소 일자형으로 변형되고 있다며 도수치료를 권했다.
의사와 짧은 면담 뒤 도수치료 안내 데스크로 보내졌다. “30분에 10만원, 한 시간에 15만원, 한시간반에 20만원인데요. 1시간반은 받으셔야 효과가 좋아요. 10회 끊으시면 태반주사랑 영양주사 3번 무료로 놓아 드려요.” “너무 비싼데...” “실손보험 있으시죠? 실손보험 있으면 보험료로 19만원이 지급되니 1만원만 부담하시면 돼요. 성함이랑 주민번호, 은행 계좌번호 이런 거만 알려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보험사에 신청해 드려요.” 귀가 솔깃해 10회, 200만원을 긁었다. 도수치료를 한번 받을 때마다 보험사에 실손보험이 청구돼 내 통장으로 19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도수치료는 10번으로 끝났다. 별로 나아지는게 없어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회 치료를 채운 것도 이미 카드로 200만원을 긁었으니 보험금으로 190만원을 돌려 받기 위해서였다.
내가 지난해 받았던 이 10회의 도수치료는 최근 실손보험에서 나타나고 있는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도덕적 해이들이 모여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2011년 109.9%에서 지난해 상반기 124.2%으로 크게 올랐다. 보험사들이 실손보험료로 100만원을 받아 124만2000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했다는 얘기다. 보험료는 지급하는 보험금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사의 경영 상태가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 올들어 실손보험료가 크게 오른 이유다. 현재와 같은 병원의 과잉진료 등 도덕적 해이가 계속되는 한 실손보험료는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나로선 어깨가 아팠던 것은 사실이니 병원에서 적당한 치료를 받고 실손보험으로 보장받으려는 욕구를 갖는게 당연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과잉진료를 해서라도 보험금을 타내는게 이익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구를 참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라는 점잖은 권고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구가 문제를 유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적절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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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는 병원마다 가격이 다 다르다. 산업재해(산재)로 처리돼 도수치료를 받으면 1회에 2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산재와 별개로 도수치료를 받으면 한시간에 10만원도 하고 20만원도 한다. 산재 처리시 도수치료를 포함한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반면 일반적인 치료시 도수치료나 추나요법처럼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은 가격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비급여 항목만 급여 항목처럼 서비스 수준과 가격을 표준화해도 소비자들은 적정한 가격에 비급여 항목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병원으로선 과잉진료에 대한 유인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비급여 의료비는 2011년 19조6000억원에서 가장 최근 통계인 2013년에는 23조3000억원으로 늘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증가의 주범이기도 하다. 실손보험 비가입자들은 날로 늘어나는 비급여 의료비 증가에 허리가 휠 정도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손보험료가 올라도 실손보험에 가입하려 한다.
문제는 의사들이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소비자로선 시간당 2만원짜리 도수치료와 20만원짜리 도수치료의 질적 차이를 체감하기 힘들다.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의사들이 반대하는 속내는 알겠지만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가격에 표준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법인데 왜 보건복지부가 손을 놓고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