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워크아웃 졸업 하고도… 늦춰지고 꼬여버린 매각에 골치로 전락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대우 계열 기업 중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한대우조선해양(131,800원 ▲6,000 +4.77%).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대형 조선사가 국내 기업 사상 가장 큰 자금 수혈을 받은 뒤에도 기업 구조조정의 최대 골칫거리로 전락하기까지 대우조선은 무수한 '풍파'를 겪었다. 워크아웃 조기 졸업 후에도 대우조선은 왜 15년 간 주인없는 회사로 남았을까.
◇워크아웃 '우등' 졸업했지만…하염없이 미뤄진 매각=대우조선은 지난 1999년 8월 '대우중공업'의 부문으로 다른 대우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외환위기 이후 '워크아웃'이란 구조조정 틀이 국내에 만들어진 후 첫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2000년 대우계열사 분할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대우조선공업이 대우중공업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법인으로 만들어진다. 대우조선은 그해 12월 채권단으로부터 1조1700억원의 출자전환을 지원받고 산업은행(지분율 40.82%)의 자회사가 된다.
2001년 2월 상장한 대우조선은 그해 8월 워크아웃을 졸업한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2년도 채 안돼서였고 대우 계열사 11곳 중 최초였다. 그해 7월 신영균 전 대우조선 사장이 대우사태와 연관된 분식회계 관련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으며 정성립 사장으로 교체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1994년 세계 선박수주량 1위를 기록했던 저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채권단과 대우조선의 '협력모델'도 구조조정의 좋은 예시로 회자됐다. 당시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 구조조정 담당 팀장이었던 현 산은 출자회사관리위원회 최익종 위원장은 당시 대우조선 워크아웃 졸업 직후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워크아웃 졸업 후에도 대우조선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다.
외환위기 파고를 넘기며 독자 생존에 성공했으나 누구도 '은행의 자회사로 남은 조선사'를 독립시키기 위한 작업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워크아웃 졸업을 앞두고 산은은 2001년 6월 당시 국회재정경제위원회업무보고에서 대우조선이 워크아웃을 끝낸 뒤 채권단 지분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워크아웃이 끝나자 마자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산은의 '계획'과는 다르게 오히려 여론에선 대우조선 매각 신중론이 대두했다. 특히 '대우조선 매각을 서둘렀다가 해외매각이 돼 국부 유출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국부유출'에 거부감이 높았던 여론에 힘입어(?)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주 매각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된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2005년 8월 경남 거제에서 ‘대우조선 매각간담회'를 열고 대우조선을 포스코처럼 국민주(株) 형태로 매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해외매각과 특정기업에 일괄매각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노조 역시 국민주 매각을 주장하며 특정 주주가 경영권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산은도 대우조선 매각을 '서두를 것 없다'는 자세를 보인다.유지창 전 산은 총재는 2005년 4월 출입기자단 세미나에서 "대우조선해양은 덩치가 너무 커 국내외 인수자를 찾기 힘든 상태"라고 밝혔다. 2005년 12월 김창록 전 산은 총재가 가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유보적인' 태도는 이어진다. 김 전 총재는 “정부와 채권단은 성급한 매각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값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한다"며 "최대주주인 산은에서 기업가치를 제고한 후 매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 쏟아져 나온 대형매물이 줄줄이 매각 대기 중였기 때문에 대우조선의 매각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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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산은이 대우조선 지배구조와 매각방식과 관련해 컨설팅회사에 용역을 의뢰하며 그나마 매각을 위한 구체적인 시도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매각을 해야 한다'는 방향 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김종배 산은 전 부총재는 2006년 6월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대우조선 매각은) 산업정책적 측면 등을 고려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결정할 것"이라면서 "산은이 대우조선을 계속 소유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주인이 바뀌는 게 좋은지 등을 포함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공개 매각시 해외로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높았고, 그렇다고 국내 자본에 대우조선을 매각하면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시비를 걸 수 있단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산은의 '눈치보기'가 이어졌다.
대우조선 매각은 대우조선 노조에게도 거센 저항을 받았다. 2006년 9월 김창록 산은 총재는 "내년초까지 대우조선해양 입찰 마무리 지을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조선업황 개선으로 높은 가격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2007년 6월 산은은 국회 재정경제위 업무현황 보고에서 “대우조선을 매각절차를 하반기 이후 적정시점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7년 5월 대우조선 노조는 “대우조선을 일괄매각하면 총파업하겠다”며 매각과정에서 노조 등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항의한다. 노조는 해외매각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산은이 지분을 전략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조' 대어 매물로 나왔지만…꼬이고 꼬인 매각=더디게 진행되던 대우조선 매각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급물살을 타게 된다. 당시 인수위원회가 산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다. 인수위가 산은 지주사 설립 시기를 2008년 상반기로 정하면서 산은이 비금융자회사인 대우조선을 빨리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2008년 3월 산은은 대우조선을 연내 매각하겠다고 공식 발표한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7년만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매각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산은이 연내 매각을 발표한 2008년 3월 26일 대우조선 주가는 하루 만에 11% 폭등했다.
유가 고공행진 속에 조선업이 호황이던 당시엔 대우조선에 눈독을 들이던 기업들이 상당수 있었다. 2008년 4월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은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며 드러내놓고 말했다. GS와 두산도 꾸준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 뒤이어 한화그룹까지 다크호스로 가세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같은 해 4월 "대우조선 인수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며 공식적으로 출사표를 냈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 인수전에 뛰어들 거란 소식이 알려진 날(2008년 4월 17일) 대우조선 주가는 4.1% 오른 4만4450원으로 급등했다. 당시 시장에선 산은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50.36%(9639만2428주)의 매각가를 5조~8조원대로 추산했다. 지분의 시가만 당시 주가(4만원) 기준으로 4조원에 육박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7년만에 매물로 나온 대우조선의 매각작업은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2008년 4월초 산은은 골드만삭스와 산은 M&A실을 공동 매각 주간사로 선정한다. 그러자 같은 달 8일 대우조선 노조는 산업은행이 노조 등 당사자 참여를 배제하고 일방적인 방향으로 회사 매각을 진행한다면서 총파업 돌입을 선언한다. 이어 노조는 5월 17일 골드만삭스가 중국 조선업체에 지분투자를 해 대우조선의 기술이 중국에 이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골드만삭스 주간사 선정을 철회하라고 주장한다.
당시 매각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시민사회로까지 번진다. 2008년 5월 17일 대우조선일괄매각에 반대하는 대우조선매각 범시민대책위의가 출범한다. YMCA 등 시민단체,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의사회 약사회 등 직능단체, 노인회 새마을운동 등과 거제시의회까지 동참했다. 이들은 해외매각 반대, 매각과정에 종사자와 지역민 참여보장, 인수업체 본사 거제 유지 등을 요구했다.
결국 5월 18일 산은은 여론에 밀려 골드만삭스의 주간사 선정을 철회하고 자행 M&A실을 단독 매간 주간사로 결정한다. 6월 12일부터 7월 말까지 대우조선 노조가 매각 실사를 거부하는 마찰도 빚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8월 22일 산은이 대우조선 매각공고를 낸다. 매각 주간사 선정부터 매각 공고까지만 5개월이 소요됐다.

미국 리먼브라더스 붕괴 뒤 금융시장 불안으로 2008년 1월 9조원대였던 대우조선 시가총액이 8월 7조8000억원대에서 10월 중순 3조7000억원대로 급락하는 초유의 상황 마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매각은 흥행하는 듯 보였다. 2008년 9월 9일 예비입찰에 포스코, 한화석유화학, GS홀딩스, 현대중공업이 참가한다. 2008년 10월 13일 대우조선 매각 본입찰에는 예비입찰에 참여한 모든 기업(포스코-GS 컨소시엄, 한화, 현대중공업)이 참가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매각에 찬물을 끼얹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포스코와 컨소시엄으로 입찰에 참여한 GS가 본입찰 사흘 후 돌연 입찰 불참을 선언한 것. 컨소시엄이 깨진 건 포스코가 공격적인 가격을, GS가 보수적인 가격을 제시해 컨소시엄 안에서 가격 합의를 못 낸 때문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단독으로라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산은은 다른 입찰자들이 물을 수 있는 법적 책임을 우려하며 포스코에 대우조선 인수 단독입찰 자격을 주지 않는다. 결국 가장 인수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던 포스코가 입찰에 참여도 하지 못하게 되고 인수전은 한화와 현대중공업의 2파전으로 좁혀진다.
2008년 10월 24일 산은은 대우조선 매각 우선협상자로 한화를 선정한다. 한화는 인수가로 6조3000억원을 써냈다. 이어 같은 해 11월 14일 한화와 산은은 지분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화는 2009년 3월 매각대금을 완납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번엔 또 금융위기 유탄을 맞은 한화의 자금력이 문제가 된다. 12월 말 한화는 산은에 “MOU 체결 후 경제 상황이 많이 달라져 내년 3월 말로 돼 있는 잔금 납부 시한에 여유를 달라"며 잔금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그러나 산은은 특혜논란을 우려해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한다. 결국 산은은 1월 한화의 우협 자격을 박탈한다.

◇'주인없는 회사'로 15년…곪아버린 '세계최고' 기업=산은은 2009년 말 씨티글로벌을 매각 자문사로 다시 한번 선정하지만 금융위기 후 악화된 시장 환경 등으로 이후엔 제대로 된 매각이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대우조선에도 '주인 없는 회사'의 후유증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지적 돼 온 게 비조선업 부문으로의 덩치 확장이다. 2006년 5개에 불과했던 대우조선해양 계열사는 2011년 36개, 2013년 45개까지 급증했다. 골프장 운영업체 에프엘씨, 장례식장업인 대우조선해양상조 등 조선업과 상관없는 자회사도 포함됐다. 결국 비판 여론에 무산됐지만 2011년엔 대우조선이 대우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꾸는 등 그룹체제로 전환하고 회장직을 신설하는 방안까지 검토된다.
외형성장 위주의 경영도 이어졌다. 자회사를 포함한 대우조선해양 매출은 2005년 4조7000억원에서 2011년 14조578억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수익은 떨어졌다. 2011년 1조원을 넘었던 영업이익은 2012년 4863억원으로 오히려 반토막 났다.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6482억원에서 1758억원으로 줄었다. 최근 조선업체 손실을 야기한 해양플랜트 사업도 이무렵 급격이 확대됐다. 2012년 상선 부문 수주는 39억달러에 그쳤지만 해양 부문 수주가 1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신규 수주액이 142억달러로 증가했다.
경영진 비리 의혹도 불거졌다. 2010년 8월엔 검찰이 공식적으로 대우조선 사장 연임로비 의혹 사건 수사에까지 나선다. 남상태 전 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실세에게 거액을 상납해 연임을 관철시켰다는 혐의였다. 대우조선 부사장이었던 남상태 전 사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3월 3년 임기 사장으로 선임된 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2월 연임했다(남상태 전 사장은 결국 2012년 3월 30일까지 임기를 채운다). 무리한 외형 확정 역시 경영진들이 임기 내 '보여주기식' 경영을 위해 둔 무리수에서 촉발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의 격차도 점점 벌어졌다. 대우조선은 1973년 대한조선공사가 경남 거제에 착공한 옥포조선소를 모태로 한 유서깊은 회사다. 오일쇼크로 1978년 대우그룹에 인수된 뒤 1989년 전세계 조선불황에 따른 조선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에 흡수 합병됐지만 국내 최초로 전투잠수함을 만들만큼 방위산업 부문의 경쟁력이 독보적이었고 LNG선 기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07년부터는 삼성중공업에 시가총액을 추월당했다. 지난해엔 국책은행들로부터 4조원을 수혈받지 않으면 독자생존이 불가능해졌을 정도로 재무상황이 열악해졌다.
한 전직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결국 대우조선에서 불거진 문제는 주인없는 회사로 오랜 기간 방치된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논리적으로는 불가피하게 공기업 산하 기업이 된 곳은 최대한 빨리 매각하는 게 맞지만 대우조선을 마치 전리품처럼 여겨 매각을 늦춰 온 정권과 주인없는 회사 아래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려 했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