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이 어렵게 선박을 수주하고도 RG(선수금환급보증)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이 RG 발급을 꺼리면서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어서다. RG는 조선사가 배를 인도하지 못할 경우 미리 받아놓은 선수금을 조선사 대신 금융회사가 선주에게 돌려주겠다는 보증이다. 조선사는 RG를 발급받지 못하면 수주 계약을 취소당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은 은행들이 돌아가면서 현대중공업 RG를 발급해주자고 제안했다. 다른 은행들은 모두 찬성했지만 NH농협은행이 거부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올 상반기에만 3290억원의 적자를 낸 상황에서 신규 RG 발급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KEB하나은행은 NH농협은행의 사정을 감안해 내년부터 RG 발급에 동참하는 조건으로 다른 은행을 설득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은행이 내년부터 NH농협은행이 동참한다는 확실한 약속 없이는 나설 수 없다고 맞섰다. KEB하나은행은 난감해졌다. 그렇다고 기본 입장이 다른 은행과 다른 건 아니었다. 다른 은행들을 설득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은 괜찮다"고 했지만 발급한 RG가 언제 부실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떨칠 수 없었다.
은행들 사이에서 현대중공업 RG를 발급하지 않으려 서로 떠넘기기가 벌어지는 것과 달리 주식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주가는 연일 52주 신고가다. 올해에만 60% 이상 급등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중공업의 주가 강세는 실적 개선 덕분이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올 상반기에 각각 1조2000억원, 2000억원의 순손실을 낸 반면 현대중공업은 6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향후 전망도 밝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이익이 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강록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조선업 불황에도 내부적 원가절감 활동으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며 "체질 개선으로 현재 수준의 선가에서도 이익이 나는 구조로 탈바꿈했다"고 밝혔다.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회사의 과거를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어제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보고 투자한다. 현대중공업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현대중공업이 조선업이 다시 살아났을 때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은행이 투자자처럼 미래를 볼 필요는 없다. 성장 가능성과 맨파워를 보고 투자하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지 은행의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주가가 오른 이유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실을 다지려는 회사의 방침과 임직원들의 노력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현대중공업은 이자를 연체한 적도 없고 은행빚도 꾸준히 줄여왔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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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RG 발급은 한때 은행에 고수익을 안겨준 사업 중 하나였다. 지금도 알짜배기 사업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현대중공업 안팎에서는 대우조선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은행 내부에서도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과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 현대중공업 RG를 미루다 저금리 시대에서 돈을 벌 기회를 잃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중요 고객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