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13년 묵은 보험 자산운용 규제의 덫 (下)

보험사들이 운용하는 자산이 1000조원이 훌쩍 넘지만 정작 성장산업과 혁신기업 등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이나 해외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권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투자처를 확대하거나 해외 금융사에 지분투자를 하면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 악화와 추가 자본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보험사 전체 운용자산은 1158조원으로 2021년 1057조원보다 101조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공채 투자액은 43조원 늘어 전체 운용자산 증가분의 43%를 차지했다. 국공채 비중도 2021년 26%에서 2025년 28%로 확대됐다.
보험사가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국공채를 쓸어 담으면서 수익성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보험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보면 2023년 상반기 이후 등락을 거듭해 올해 상반기 8.52%로 10%가 무너졌다. 특히 생보업계는 올해 상반기 ROE가 5.84%로 떨어졌고 손보업계 역시 13.21%로 낮아졌다. 보험사의 운용자산이 국민연금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자본 대비 수익을 내는 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요 해외보험사 ROE와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지난해 말 △알리안츠 18.1% △아비바 17.5% △처브 15.0% △메트라이프 12.9%로 국내 보험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주식·벤처·인프라 등으로 투자처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2023년 이후 건전성 지표인 킥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투자를 확대할 수록 자본부담이 늘어나는 연쇄 반응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비상장기업이나 프로젝트 등에 대한 직·간접 지분투자는 킥스에서 '기타주식'으로 분류돼 높은 요구자본을 부담한다.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 진출을 하려고 해도 자본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 미국 특화보험사 포테그라를 약 2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킥스 비율이 대폭 하락했다. 포테그라 인수 직전 올해 1분기 DB손보 킥스는 232.1%, 인수 이후 2분기 204.3%로 27.8% 포인트(P)가 떨어졌다. 보험금 지급여력을 나타내는 킥스가 30% P가까이 떨어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해당 보험사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자본 부담이 생기자 DB손보는 지난 6월 4100억원 규모의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자본구조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DB손보 관계자도 "해외진출 과정에서 생긴 자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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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투자가 건전성 지표에 직접 영향을 주다보니 정부가 주도하는 생산적금융에 보험사들이 나서기도 어렵다. 보험연구원이 24조원의 생산적 금융 투자를 가정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투자 전 킥스는 208%였지만 투자에 따른 요구자본 증가로 수익 발생 전에는 196%까지 12%P 하락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에 적극 나서는 보험사 일수록 자본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정책 프로그램이나 적격 벤처투자 등에 대한 주식위험액을 낮추고 장기보유주식과 인프라 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사들은 인공지능(AI)이나 헬스케어 산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AI나 헬스케어 분야 등 특정 분야라도 더 많은 투자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보험사 수익률이 높아지면 결국은 보험료를 낮추거나 소비자의 보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투자도 하지 말라"는 자산운용 사전규제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험 자회사에 대한 투자 한도를 '총자산의 3%'로 제한한 보험업법과 함께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동일 계열사 주식을 10% 이내로만 보유하도록 한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대표적이다. 각각 2003년, 1997년에 만들어진 '사전 규제'다.
엄격한 사전 규제는 삼성전자의 '밸류업'에도 악재로 작용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비금융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금산법이 허용하는 최대 한도(10.0%) 만큼 보유 중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은 즉시 확정하지 않았다.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최대주주인 삼성 금융계열사의 보유 지분이 금산법에서 허용하는 10%를 초과할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별도 승인이 없다면 10% 초과분은 즉시 매각해야 하는데, 이는 그룹의 지배구조와 직결되는 문제다.
주주권 강화와 금산법이 정면충돌하면서 "자사주 소각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30여년 전인 외환위기 시절 만들어진 금산법 재논의가 필요하지만 "과연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도 작지 않다.
보험업법 106조의 자회사 주식·채권 투자한도 규제 역시 삼성 금융계열사에겐 '아킬레스건'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계열사 투자한도 여유분은 6조원에 육박(5조8000억원)할 만큼 넉넉하다. 다만 삼성전자 보유 지분 10%를 취득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면 투자한도 규제를 훨씬 넘는다. 보험사는 다른 업권과 달리 주식의 가치를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하다보니 한도 규제를 초과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만 '삼성 특혜'라는 공격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시가냐, 원가냐"보다 투자한도라는 사전 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검토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의 솔벤시II 에서는 자산운용 한도를 별도 규제하지 않고, 자산운용의 위험성 등을 사후적으로 규제한다. 우리로 치면 킥스(K-ICS)로 규제 한다. 그밖에도 금융복합기업집단 감독, 공정거래법, 지배구조법 등 엄격한 사후 규제가 이중삼중으로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대공황 이후 산업 자본과 은행이 얽혀 동반 부실화 된 경험에서 금산법이 나왔지만 금융당국이 촘촘하게 관리하는 현 시점에서 과거 논리를 교조적으로 적용하는게 맞는지 다시봐야 한다"며 "'너희는 아예 사귀지도 말라'는 식의 사전적 규제가 필요한지, 사귀는건 허용하되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강하게 묻는 사후규제로 갈 것인지 큰 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