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조선인 창업가가 제시한 글로벌 금융의 역할

[투데이 窓]조선인 창업가가 제시한 글로벌 금융의 역할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2026.05.10 07:00

[UFO 칼럼]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사진=머니투데이DB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사진=머니투데이DB

최근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일본 최초의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금융) 유니콘, '고조앤컴퍼니(Gojo & Company)'를 이끄는 신태준 대표를 초빙한 자리였다. 자이니치(재일한인) 3세로서 일본과 한국 어느 쪽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난민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신태준 대표는 기회의 평등을 위해 12년 전 도쿄에서 창업해 현재 6개국에서 200만명 이상의 중저신용자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로 처음 강연해본다는 그였지만 유창한 한국어 구사가 돋보였다. 신 대표의 조부모는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하에 놓였던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국적은 조선이었다. 이후 광복을 맞아 조선이라는 국적은 사라지고 재일 조선인들은 무국적자가 됐다. 부모가 그 지위를 물려받았고 신 대표도 태어나면서 무국적자가 됐다.

신 대표는 의도적으로 무국적 상태, 즉 난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난민 여행 증명서로 20~30개국에 출장을 다녔고, 입국 심사를 받을 때마다 두 번 중 한번은 별실에서 수 시간 동안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쳤다. 난민을 위한 입국 절차를 만들어달라고 해당 정부에 직접 요청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번 입국 심사관이 던지는 '너는 누구냐'는 질문은 매번 그에게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상기하게 되는 그 만의 장치가 되었다.

지금은 난민이자 재일한국인으로서 연 매출 3000억원에 달하는 회사의 대표지만 대학 시절 그의 꿈은 인권 변호사였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시위에도 참여했으나 인권 활동에도 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모건스탠리에 입사했고, 이후 유니슨캐피털 등 사모펀드(PE) 업계에서 8년을 일한 뒤 2014년 창업했다.

고조앤컴퍼니의 사업 모델인 마이크로파이낸스는 겉보기엔 대부업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단지 고금리와 중저금리의 차이로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역사가 흐르고 있다. 마이크로파이낸스의 효시는 1976년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가 방글라데시에서 세운 '그라민 은행'이다. 담보가 없어 금융권에서 쫓겨난 빈곤층에게 오직 '신뢰'와 '자립 의지'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 이 실험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누스 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 아니라 금융이 '배제'가 아닌 '포용'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가치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고조앤컴퍼니는 타지키스탄이나 인도의 금융기관을 인수해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가치를 높이는 사모펀드식 전략을 구사한다. 그 목적은 금융의 사다리가 끊긴 곳에 다시 다리를 놓는 것이다. 고조는 기존 금융 거래 이력에 기반한 신용등급에 더해 더 정교하고 인간적인 데이터를 결합해 이 사람이 돈을 돌려줄 사람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션을 정교한 시스템과 자본의 언어로 무장시킬 때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진짜 스케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조앤컴퍼니는 증명하고 있다.

마침 같은 시기, 한국은 청와대발 금융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는지를 묻는 대통령의 질문에 대해 김용범 정책실장은 '끊어진 시장을 다시 잇고, 방치된 시장을 메우기 위해 서민금융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낡은 신용평가의 틀을 넓혀야 한다'고 답했다.

30년 내에 일본 최대의 은행을 넘어 민간 분야의 세계은행이 되겠다는 고조앤컴퍼니와 신 대표는 정확하게 답을 내놓는다. 새로운 구조와 시스템에 기반한 새로운 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0년, 200년 후를 돌아봤을 때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금융 유산이 무엇인가. 거친 논란이 없는 대안이란 없는 법. 이 논의가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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