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보다 '안전' 베팅, K-모험자본의 민낯]②
중기부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정하며 'CPS' 권고
실효성 담보 위해 '보수적 LP·선행라운드'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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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가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를 개정하고 상환권(R)이 빠진 전환우선주(CPS) 사용을 권고하고 나섰다. 25년 넘게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기본 투자 방식으로 쓰여온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관행을 깨고 글로벌 표준에 맞춰 투자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현장에서 오랜 기간 제기된 실효성 논란을 해소하고 스타트업 창업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RCPS는 회사가 이익을 냈을 때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환권과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전환권, 배당 우선권이 결합된 주식 형태다. 문제는 상법상 상환권 행사가 '배당가능이익'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이오나 IT(정보통신) 등 대다수 초기·기술 스타트업은 적자 상태여서 배당가능이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계약서상에는 존재하는 권리이지만 정작 회사가 어려울 때는 행사할 수 없고, 이익이 날 정도로 성장한 회사에는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이유가 없는 역설적인 구조다. 게다가 회계기준에 따라 부채로 인식될 수 있어 스타트업의 재무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여전히 벤처투자 계약의 대부분은 RCPS로 이뤄진다. 벤처투자종합포털에 따르면 매년 전체 벤처투자의 70%가량이 우선주 형태로 집행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우선주 거래의 대부분이 RCPS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RCPS가 투자 현장에 본격 도입된 것은 2001년 무렵이다. 1999년 말 벤처버블이 붕괴되면서 대규모 손실을 입은 당시 창업투자회사가 원금 회수용 안전장치로 상환권 조항을 활용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창투사의 주요 투자 대상이 대기업 협력사나 납품 기업, 계열사 등 이미 일정 수준의 상환 이익을 내는 곳들이 많았지만, 상장(IPO)을 통한 회수 가능성이 낮아질 경우를 대비해 RCPS를 보편적인 투자 수단으로 채택했다.
한 VC 심사역은 "바이오 기업의 경우 IPO 이후 시점까지도 배당가능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해 사실상 RCPS로 투자하는 의미가 없다"라며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방식인 탓에 관례적으로 유지해왔으나,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CPS 투자 등 대안적인 형태를 조금씩 검토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CPS가 RCPS를 대체해 투자 현장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선행 라운드로 인한 구조적 '록인(Lock-in)' 영향이다. 기존 주주들이 RCPS로 들어간 상태에서 후속 투자에 참여할 경우, CPS로 투자를 하려고 하더라도 출자자(LP) 측에서 '왜 우리만 불리한 조건으로 들어가느냐'며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 보통주나 CPS를 선호하는 외국계 VC 역시 국내 투자에서 리드 투자자가 아닐 경우, 단독으로 투자 조건을 바꾸기 어려워 기존 RCPS 양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실정이다.
중기부 개정안이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에 그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각 운용사의 관리부서나 투자팀으로 내려오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한, 현장의 관성에 따라 익숙한 RCPS 계약서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금융위원회 관할인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 등은 중기부의 권한 밖에 있어 상환권을 포기할 유인이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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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대표변호사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표준계약서만으로는 VC가 보수적인 LP를 설득하기 어렵다"며 "한국벤처투자 출자사업 등에서 CPS 투자 건에 가점을 부여하는 등 정책적 유인책이 동반돼야 LP와 VC 모두 적극적으로 CPS 전환에 나설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정책금융기관과 보수적인 금융권 LP의 내부 규정도 관행을 유지시키는 요인이다. 손실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따지는 감사 부담 탓에, 현장에서는 배당가능이익이 없어 실제 행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상환권을 '심리적 안전판'으로 계약서에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RCPS 선호 경향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선명하게 확인된다. 기술보증기금의 최근 5년간 투자 내역을 살펴보면 전체 직접투자 건수의 상당 부분을 RCPS 형태로 집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 VC 관계자는 "실효성이 적은 상환권 조항을 빼고 계약을 진행하면 VC 입장에서도 계약 검토나 관리 부담이 줄어들어 훨씬 효율적"이라며 "주요 LP들이 투자 가이드를 정비하거나 인센티브를 내거는 등 규정 개선이 병행돼야 현장의 변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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